Oct 22

대학을 졸업하며 사회에 진출할 때만 해도, 내가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벌써 입사한 지도 4년.

서른을 넘겨 나는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 잡혀 버렸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염증을 느껴버린 탓도 있을 것이고,

10년 후의 내 모습이 너무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새삼 불안에 빠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실에 안주해 발전 없는 나날을 보내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 탓이 가장 클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겨우 겨우 갖춰야 할 것들만 갖춰서 대학원 원서만 썼을 뿐이다.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모르는 에세이를 겨우 끄적거리며 잠시 고민에 빠져 보지만, 이내 일상으로 돌아와 버렸다.

지난 8월, 토요일에 있었던 입학설명회에 참석했던 때만 해도 배움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 두고서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할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나는 내년에 있을, 과장 진급 후의 내 모습과 대학원 졸업 후 다시 사회에 진출했을 때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보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따름이다.

결과가 나오고 고민해보자.

11월에 서류 전형 발표, 합격한다면 면접을 최선을 다해서 보고,

12월에 최종 합격자 발표.

1월에 등록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겠지 싶지만 어디까지나 내 고민의 시기를 늦추려는, 비겁한 행동이란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아직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점점 더 어려지고 약해지는 것 같다.

좀 더 어렸을 때, 안철수 교수처럼, 손석희씨처럼 배움에 때와 시기를 두지 말고 늦깍이 공부를 달가워 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던 나이지만 겨우 서른이 넘었을 뿐인 지금 나는 배움을 주저하게 된다.

현실이란 놈은 내게 너무 큰 괴물같다.

Sep 27

“살인의 해석”이라는 제목만 본다면,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 살인사건을 풀어 나가는 범죄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뻔한 추측으로 예단하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소재와 배경을 담고 있다.

1900년대 초에 실제로 있었던 프로이트와 융의 미국 방문을 소재로 삼아, 그들이 직접 뉴욕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간접적으로 연류되고(물론 피해자측과의 접촉으로) 그들의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주인공인 스트래섬 영거 박사와 사건의 핵심인물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프로이트와 융을 비롯해서 당시 활동하던 에이브러햄 브릴, 산도르 페렌치, 스미스 엘라이 펠리페, 어니스트 존스, 찰스 루미스 다나 등 수많은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고

20세기 초,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성장을 이끌어가던 미국 뉴욕의 맨하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 이론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문학적 요소, 스승과 제자이지만 한 편으로는 반목하는 프로이트와 융의 묘한 관계 등 많은 양념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들어진 이 멋진 추리소설은

실제로 셰익스피어와 정신분석학, 법률학 등을 깊이있게 공부한 작가 제드 러벤펠드의 배경이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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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8

“야마구치 마사야”라는 일본 작가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제목.

동양적 세계관이 이입된 흔치 않은 좀비물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일본 미스테리계에서 아주 호평받은 본격 추리소설이다.

20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에 소재한 툼스빌이라는 마을과 그곳에서 장의사업을 크게 이뤄낸 스마일리 발리콘가(家)가 소설적인 배경이다.

그리고 작가는 거기에 소설적인 허구를 하나 더한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시체들이 되살아나 자신의 죽음을 잊은 듯이 행동하는 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물론, 이들은 사고능력을 잃고 살아있는 사람의 육체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와는 다르다.

죽기 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며, 때로는 살아있을 때 보다 더 나은 운동능력(걷지 못하던 사람이 뛸 수 있게 된다든지)을 가지게 되어 마치 생명이 끊이지 않고 죽음이라는 소멸의 시기가 유예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살아 있는 시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작가는 발리콘가를 둘러싼 살인사건을 흥미롭게 전개한다.

애초에 기대했던 소재는 아니었으나 굉장히 독특한 소재와 전개를 보여주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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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7

트위터를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글인데, 번역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훌륭한 우화인 것 같아서 옮겨본다.

수조의 우화(The Parable of the Water-Tank)

by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

아주 건조하고 메마른 나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민중들은 물이 부족해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서 민중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물만 찾으러 다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해 죽어갔다.

그럼에도 그 나라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교활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곳에 물을 모아 저장해놓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자본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중들이 자본가들에게 가서, 물이 너무 필요하니 마실 수 있도록 모아둔 물을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꺼져, 이 멍청한 인간들아! 왜 너희들한테 우리가 모아놓은 물을 줘야 되나. 그러면 우리도 너희들처럼 될 거고, 너희들과 같이 죽어갈 텐데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우리의 노예가 되면 물을 주겠다.”

그러자 민중들이 말했다.“물만 주신다면 저와 제 아이들은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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