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2

2010년 6월 2일, 제5대 동시지방선거일

아침 일찍 가려고 마음 먹었었지만, 지난 주말에 회사 워크샵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해 남은 피로가 발목을 잡았다.

점심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흡사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더위가 ‘역시 아침에 오는 건데…” 하는 후회를 불러일으켰다.

본의 아니게 주소지를 이전해놓은 탓에, 지하철까지 갈아타며 편도로 40분 정도 떨어진 지역의 투표소에 다녀와야 했지만

다녀온 뒤 확인해 본 실시간 투표율을 보며,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8번의 투표를 한꺼번에 해내야 하기에, 종이에 내가 선택한 후보들 이름을 적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소신껏 내 권리를 행사했기에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비록 내가 찍은 후보들이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대중적인 지지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동안 투표 참여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는데 그래도 확인해보니 모종의 성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Jun 04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은 그의 초기 시절 작품이다.

요즘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꽂혀서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데다가, G마X이나 옥X 같은 인터넷쇼핑몰에서 4~5천원 정도에 무료배송으로 책 지름을 부추기고 있어서 이 책도 자연스럽게 내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엘리트 로봇공학자로 회사에서 일류 중공업 회사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연구자로 손꼽히는 위치에 오른 스에나가 다쿠야.

가난하고 불행했던 성장과정을 거치며 출세와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차기 사장의 사위가 될 기회가 찾아오고,

그는 당연히 그 기회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자 하지만, 때마침 불거진 애인 야스코의 임신은 그의 앞길에 살인에의 유혹이라는 덫을 놓고 만다.

그리고 그는 야스코의 다른 애인들- _-과 모의해서 야스코를 죽이고 그 시체를 릴레이로 운반해 각자의 알리바이를 만든다는 살인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뭐.. 대충 이런 줄거리다.

당연히 그 살인계획이 틀어지게 되고, 사건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가 종국에는 진범, 아니, 숨겨진 범인이 나타나고 모든 의문이 풀리며 사건이 해결된다.

개인적으로는 기대를 많이 했던 탓에 그 기대에는 많이 못미치는 작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바로 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모방범”을 읽었기에 그 여운에 가린 탓도 있을 것이고,

작가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의 느낌을 기대하며 읽은터라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져버린 탓도 있을 게다.

아무튼 대체로 재미있게 읽긴 했으나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큼의 재미는 주지 못한 것 같다.

역시 사탕 먹고 수박을 먹는 게 아니었어…

Jun 06

몸에 열이 유난히 많아서, 겨울에는 가족들에게서 “인간 난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나에게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참 힘들다.

한겨울에도,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땀을 흘릴 정도로 뜨거운 삶을 살다보니, 요즘처럼 아직 몸이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더위가 급습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지치곤 한다.

게다가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다보니 땀 냄새를 막아내는 것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꼭 해야할 의무가 되어버렸다.

작년까지는 데오드란트를 애용했다.

매일 저녁에 샤워하고 나면 겨드랑이를 비롯해서 땀이 자주 나고, 땀 냄새가 나면 삶이 괴로워지는 곳들에 듬뿍 듬뿍 데오드란트를 발라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겨드랑이 부위의 옷감이 변색을 일으켜 누르스름해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겨드랑이 쪽이라 평소에는 가려지는 부위인데다가 유심히 지켜보지 않으면 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변색이긴 했지만, 주로 하얀색 셔츠를 입는 나로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올해 “드리클로”라는 제품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다한증 환자의 치료 목적으로 나온 건데, 여름에 땀 억제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말 그대로 치료제이다 보니 약국에서밖에는 구입할 수 없다.

20㎖ 작은 병이 11,000원 정도.

생각보다 작은 양이지만, 한 번 발라주면 일주일 정도는 간다. (내 기준)

사용한 지 2주 정도 지났는데, 효과 하나만은 정말 좋은 것 같다.

데오드란트랑 병행해서 쓰고 있는데(드리클로는 겨드랑이 전담 마크), 땀 배출이 억제되어서 그런건지 요즘 물을 자주 마셔서 그런건지 몰라도 예년에 비해 소변을 자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그것만 제외하면 대체로 만족스럽다.

출퇴근 길에 남다른 “암내”로 주변 사람들의 호흡곤란을 야기시키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이 제품을 건네고 싶다.

후아~ 더운 여름이 오는구나…

Jun 12

어디 가서 “명함도 못내밀” 사회 초년생 축에 속하는, 미숙함 투성이이지만 어쨌든 2007년 말에 입사했으니, 어느덧 햇수로는 나도 4년차 직장인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싶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되고, 그 세월동안 별로 이뤄놓은 것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반성에 빠져보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젊고,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을 것이기에 지금까지 내게 주어졌던 것보다 더 좋은 기회,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엊그제였던가?

같이 일하는 후배사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지금 다니는 직장과 직장생활에 대한 생각을 잠깐이나마 공유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 후배사원에게서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이 깊다는 인상을 자주 받아왔지만, 이제 갓 수습 딱지를 뗀 것치고는 상당히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얘기를 털어놔서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걸 계기로 새삼 나의 직장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직장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만족할만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루 종일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지루한 일들에 둘러싸여 한숨만 내쉬고 있지 않는가?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재미를 맛본 것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어느새 사회생활을 갓 시작할 때의 거창한 포부와 계획들은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점점 편한 것과 쉬운 것만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는,

결국 내가 그토록 되기 싫어하던 모습의 “돈벌이 기계”로 점점 체질을 바꾸어가고만 있다.

매일 아무 생각없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정해진 근무시간 동안 의무방어를 하고, 또 아무 생각없이 퇴근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10년, 20년 뒤의 내 자신에게도 떳떳해질 수 있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 「구두 닦는 철학자」라는 글이 있다.

이런 내게는 좋은 자극제로 작용하는 내용이기에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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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9

나는 취향이 좀 별난 사람이라, 괴담류의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등을 아주 좋아한다.

요괴나 괴물, 귀신 등의 존재를 거의 믿지않는 편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 픽션의 세계에 더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의 시리즈 3연작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 중 첫번째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2005년에 아베 히로시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한 것이 내 얄팍한 기억에는 3년쯤 전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정도의 배경지식 없이 무작정 접한터라 읽고 나서야 “요괴”를 다룬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인공 세키구치와 교고쿠도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까지 운운해가며 뇌와 꿈, 의식과 무의식, 주술과 요괴 등에 대해 다소 복잡한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우부메”라는 일본 요괴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유명세를 탈 정도로 잘 쓰여진 미스터리물”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짐짓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였을 뿐.

읽어나가다 보니 모든 내용들이 퍼즐 맞추듯 짜맞춰지고, 마지막에 모든 진실이 드러나면서 “잘 썼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불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요괴와 귀신들이 살고 있는 애니미즘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신적인 종교관이 힌두의 나라 인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라이다.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일본의 요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별스런 취향을 가진 나에게는 더 흥미롭게 읽힐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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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7

아르까지 스뜨루가츠끼와 보리스 스뜨루가츠끼 형제가 지은, 독특한 제목의 러시아産 디스토피아계 SF 소설.

예전에 예브게니 쟈마찐의 우리들 이후, 오랜만에 읽은 디스토피아계 소설이자 러시아 소설이 되겠다.

원래 절판되어서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몇년 전에 다시 복간되어서 다행히 내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책 말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또한 복간되어 시중에 유통되고 있어, 디스토피아계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반갑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계 소설과는 달리, 이 책이 다루는 시공간은 미래사회의 창조된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현재하고 있는 레닌그라드다.

어느 순간, 자신도 그 중요성을 가늠하기 힘든 학문적인 성과를 일궈내게 된 천문학자 말랴노프가 미지의 문명(4차원, 외계인으로 대변되는)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되고,

그가 학자로서의 양심과 현실적인 안락(행복)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주된 줄거리로 그리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나 쟈마찐의 우리들 같은 배경과 내용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조금은 당혹케 하는 내용이었으나, 단순히 당대의 소련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학자들, 또는 일반 대중들도 누구나 겪게 마련인(정도의 차이느 있겠지만) 이상적인 삶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의 괴리와 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내면적인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해 줄 만한 작품이다.

사실 소설적인 재미는 조금 부족하다 싶지만, 주인공이 그다지 매력적이기 보다는 옆집아저씨 같은 친숙함만을 전해줄 뿐이지만,

읽고 난 뒤에 뭔가 생각할 “꺼리”를 하나쯤 던져주는 내용이다 보니 적어도 독특한 제목에 혹해서 읽었다가 낚였다는 낭패감을 느끼게 할 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Jun 28

청소년 시기에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한다.

늘 “나”를 중심으로 주변 세계를 재구성하고, 거기에 맞춰 사물과 사람과 사건을 인식한다.

그러다,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아닌 “내 주변”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성장해가고, 어른이 되어 간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짓는 가늠자는 타자에 대한 인식에 있다.

내가 성장하기 시작한 계기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즈음의 일이었다.

윤리 교과서에 나왔던 문장,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는 저쪽에서는 정의가 아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주 간결하지만, 그래서 더욱 극명한 공리로 내게 각인된, 저 한 줄의 문장은

그때까지 내가 정의의 사자라도 되는 양, 나는 항상 정의롭고 절대선을 추구한다고 믿어왔던 나의 맹신을 무너뜨렸고,

세상에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정의, 절대적인 믿음은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껍질을 깨고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가는 새처럼, 나의 좁은 세계를 파괴할 수 있었고, 비로소 어른이 될 자격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격”을 얻게 되었을 뿐.

물론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어른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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