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5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천명관의 “고래”는 한 마디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다음에 등장할 인물을 궁금해하며, 다음 장에 전개될 이야기를 상상하며, 정말 오랜만에 책장 넘기기의 즐거움을 느껴본 것 같다.
국밥집 노파 – 금복 – 춘희로 이어지는 하나의 서사가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는 개성 넘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엮어내는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들이 무수히 자리하고 있다.
전통소설을 읽는 듯 하다가도 갑자기 판타지 소설같은 황당함에 놀라게 하는,
“고래”의 낯설지만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전통적인 소설 형식의 파괴도 신선하게 다가왔고,
중간 중간 끼어드는 변사의 “구라” 섞인 거침없는 입담 또한 나를 피식거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문학적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 온 작가인지, 그의 문학사적 위치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소설을 통해 그가 이야기꾼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점은 명확히 알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참 재미있지만, 결코 영화화 되거나 드라마화 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상업적인 영상의 틀만으로 담아내기에는 “고래”는 너무 큰 상상력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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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8
내가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물론 그 보다 훨씬 어렸을 때도, 책장에 꽂혀있던 “일본 추리문학 선집”이나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인 김종성씨 등의 단편을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추리소설 한 번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읽은 건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읽었던 것들은 어린 내가 읽기에는 성이나 범죄 묘사 부분이 나이에 걸맞지 않다보니 내용 이해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재미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중학생이던 나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소년탐정 김전일”을 열심히 읽으며 탐정류 추리소설에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은 활자라는 제한된 정보를 통해 상상력을 극대화했을 때 그 재미가 큰 법인데, 글 보다는 그림이 중심이 되는 만화라는 매체는 도무지 상상력이 자리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 폭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가 분량의 한계 때문에 트릭이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허술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 무렵에 읽었던 책 중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있다.
아마 내가 읽어 본 추리소설 중에 가장 특이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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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3
작년 12월에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노동 OTL” 기획기사를 읽고 관련 글을 포스팅했었다.
그런데 그때 그 기획기사가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오늘 알게 되었는데, 4월 말에 책으로 묶여 나온 게 아닌가.
4천원 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라는 제목의 책.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관련 링크 : 인터넷서점 예스24 문화웹진 나비 기사 | 도서 정보
May 23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한 편으로는 벌써 1년이 지났나 싶기도 하고, 다른 한 편이로는 아직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다.
1년 전 그 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1년의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1년 동안 이 땅의 민주주의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1년이라는 시간의 무상함을 절감하기도 한다.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 투표하라고, 가장 소극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표라고 열심히 떠들고 다니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아무 비판적인 사고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아버지 세대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아무리 투표하라고 떠들어도, 그래서 투표율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올라간다 해도 이 땅의 모습은 6/2 이전과 이후에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번에도 투표를 할 것이고,
소위 말하는 대세와는 거리가 멀어서 당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아직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고
과거 선배들의 노력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듯이, 언젠가는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나의 한 표, 너의 한 표, 우리의 한 표가 그런 원칙을 지켜내고, 믿음을 현실로 바꾸는 첫걸음이 되어줄 소중한 권리라는 소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 듯,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밤..
그 분과 그 분이 지켜내려고 했던 민주주의, 이 땅의 미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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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3
9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최초로 유전자 복제에 성공, 돌리라는 양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인류는 과학의 진일보라는 찬사 이면에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월권에 대한 종교적, 윤리적 논쟁에 휩싸여야 했다.
인간에게 생명을 창조할 권리가 있느냐는 문제는 그 이후로도 생명공학의 발전과 평행선을 그으며 계속되는 논쟁거리였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지향하는 곳은 인간 자체의 복제를 통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아님을 강조하며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리고 며칠 전,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이 아닌 “제조”의 방법으로 박테리아를 만들어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인간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생명체.
천안함 사건과 지방선거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와중에 과학계에 이런 놀라운 사건이 그냥 묻히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다.
May 23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거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김광규, 1979
May 31
꽤 뚜꺼운 책 3권, “모방범”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나는 소설이 끝에 다다르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소설 “모방범”은 트릭과 반전으로 포장된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다 궤뚫고서 일련의 연쇄살인과 그 사건 이후의 범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눈으로 좇아가기만 할 뿐이다.
의외의 전개도 없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나오지 않는다.
다 읽고난 지금에는 오히려 “쓰카다 신이치”라는 소년의 성장소설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미있다.
범인과 형사, 피해자 유족과 그 주변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유족)에게 소설의 중심을 맞추고 있어 다소 신선한 느낌마저 안겨준다.
…
잔혹한 범죄 사건들이 종종 언론에서 회자되고, 우리는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범죄자들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차곤 한다.
하지만, 그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따뜻한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그들은 대중들에게 피해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해있기는 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들이 어느 정도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으리라는 편견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포털 뉴스의 댓글 중에서 그런 삐딱한 시선의 편린을 발견할 때면,
나도 ‘글쓴 놈이 그런 일을 당해봐야 정신차리지’ 하고, 저주의 마음을 품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인간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은 비단 범죄자들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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