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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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수행 중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소. 술과 여자요. 그건 둘 다 독이오. 술은 감정을 해이하게 만드는 독이고, 여자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독이오.”

이념의 현수막을 내건 정치적 전쟁은 바야흐로 그 수레바퀴를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어느 쪽에서나 민족은 내세워졌으나 정작 수레바퀴 아래 깔려야 하는 건 민족이었다.

장광산도 금산도 그리고 조계산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들도 농밀한 어둠의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무수하게 뻗은 산줄기들은 모두 북으로 북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조계산 줄기는 무등산 줄기와 손을 맞잡으며 섬진강에 이르고, 그 지맥은 섬진강을 뛰어넘어 지리산으로 이어졌다. 산속에 산을 품은 지리산의 준령들은 북으로 치달아 오르다가 덕유산을 만나고, 덕유산은 가쁜 숨을 몰아 추풍령에 다다라선 속리산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그 줄기가 소백산에 이르러, 원줄기인 태백산맥이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진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까지에 붙어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 1권

 

“과거란 망각이 아니라 현재의 축적이라는 말이 맞군.”

내가 선우 선생한테 하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다면, 현실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선우 선생이 겪은 경험에 예속되거나 또는 피해를 입은 보복감정으로 가치를 설정하거나 판단의 기준을 삼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탈피하지 못하면 생각이 왜소해지고, 사태를 오판하게 되고, 사람을 오해하게 되고, 스스로 외로워지게 됩니다.

- 3권

 

가난이란 육신을 배고프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다.

- 4권

 

농민은 생체언어로 사회에 발언하고, 생체언어로 삶의 진실을 표현하며, 생체언어로 역사에 참여한다.

- 5권

 

전쟁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지 모르지만 전쟁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전쟁은 정의도 사상도 아니다. 윤리나 도덕은 더구나 아니다. 전쟁은 오로지 힘일 뿐이다.

그러고보면 이번 전쟁은 겹겹의 싸움이었다. 겉거죽은 이땅을 반 동강낸 미국과 소련의 응등거림이었고, 속거죽은 그 두나라가 내세우는 주의에 따라 무장한 군대의 맞부딪침이었고, 그 속살은 착취한 지주와 착취당한 소작인들의 맞대거리였다. 이번 전쟁은 양쪽 군대만의 싸움이 아니라 지방마다 소작인들이 들고일어나는, 겉과속이 한꺼번에 뒤집어지고 엎어지게 되어 있는 싸움판이었다. 그런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갈라질지는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 6권

 

전쟁은 명분으로 시작되어 광적인 살인과 파괴를 거친 다음 잿더미로 끝난다…… 이학송의 머리에 모아진 생각이었다.

- 7권

 

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기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뿐이며, 자각한 자에게 비로소 역사는 시간의 단위구분이 필요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역사는 시간도, 사건도, 기록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저 먼 옛날로부터 저 먼 뒷날에 걸쳐져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올바른 쪽에 서고자 한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엮어진 생명체. 그래서 역사는 관념도, 추상도, 과거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솥뚜껑 같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 역사는 크는 것이다. 솥뚜껑은 하나가 아니었다. 솥뚜껑은 수없이 많았다. 이제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가는 하나의 솥뚜껑이고자 했다.

- 10권

 

전쟁, 그리고 휴전.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갈 자들.

‘빨치산’이나 ‘남부군’같은 생소한 단어들을 그 의미와 함께 재미를 통해 알게 해 준 ‘태백산맥’.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이고, 작가가 좌향의 역사인식을 가지고 책을 집필했음이 분명하기에 이 소설 하나만으로 6.25라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테마,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역사 인식을 일소하고 뒤집어버리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교육을 통해 굳어진, 반공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는 내 역사관에 어떤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스물 일곱 해나 살았건만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어떤 사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부끄러운 모습을 가진 나이기에 상당히 의미있는 텍스트 읽기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