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리처드 애덤스 지음 /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
ISBN : 89-7196-985-7
1972년 영국에서 출간된 동물 판타지 소설. 열한 마리 토끼들이 재앙이 닥친 고향 마을을 탈출해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온갖 모험과 유혹, 전투, 사랑, 우정이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죽음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앞일을 예지하는 파이버,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굴의 전사 빅윅, 뛰어난 이야기꾼 댄더라이언, 침착하고 총명한 블랙베리, 몸집은 작지만 충직한 에이콘 등 다양하고 생생한 등장인물이 읽는 맛을 더한다.
이 소설은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다. 출간되자마자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수많은 찬사와 격찬을 받았고, 영미권에서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비유되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원작의 명성을 살려 1978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뛰어난 문학성 덕분에 영미권에서는 고등학교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작가 리처드 애덤스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며, 카네기 상과 가디언 상의 영예를 안았다.
우선 출판사부터 짚고 넘어가면, 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주로 출판하는 사계절 출판사다.
어렸을 적 사계절에서 나온 책을 상당히 많이 읽고 자랐기에 오랜만에 보는 출판사명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경기 침체와 함께 가뜩이나 빈약한 재무구조로 인해 우리 출판업계가 전반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용케도 잘 버텨주고 있나보다.
요몇년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간 출판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무쪼록 오래오래 장수하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양서들을 많이 출판해주길 바란다.
책 얘기로 돌아와서, 우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토끼들”이다.
흔히들 이 책들 두고 “동물 판타지 소설”의 백미라고도 하고, 동물판 “반지의 제왕”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읽어보면 탄탄한 구성과 개성넘치는 등장 캐릭터들, 뛰어난 배경 묘사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잘 쓰여진 책이다.
이미 애니메이션화 되어있고, 우리나라에서는 EBS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고 한다.
등장하는 게 토끼들뿐이라 영화화는 어려울까?
“워터십다운… “은 동물이 주인공이지만, 일련의 우화들처럼 의인화시킨 동물을 빗대어 인간 세상을 풍자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은 아니다.
(이런 소설은 역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지존급이 아닐까 싶다)
단지 동물(토끼)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물론 허구의 것이지만) 풀어낸 소설일 뿐이다.
물론 소설 곳곳에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는 모습이나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워터십다운(민주주의), 에프라파(전체주의) 토끼마을의 모습 등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결말 부분에도 드러나 듯, 에프라파 마을을 무력으로 통치하던 토끼이자 이 소설의 최고의 악역인 “운드워트 장군”조차도
토끼의 수준을 넘어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인 애덤스는 정치적인 문제에까지는 손을 쓰고 싶지 않았나 보다.
만약 그가 정치적인 가치 판단을 개입시켜 결말을 달리 했다면 “동물농장” 버금가는 정치 우화 소설이 되었을까?
이 책은 몇가지 재미있는 요소들을 안고 있는데,
먼저 책 곳곳에 등장하는 토끼어들이다.
예를 들어, “엘릴”은 여우나 담비, 고양이 등 토끼의 적들을 뜻하는 말이며
“실플레이”는 토끼들이 풀을 뜯기 위해 굴 밖으로 나오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토끼어들을 설명하는 별도의 페이지가 필요할 정도로 자주 등장하기에
나중에는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아닐까 착각도 든다-_-;;;
두번째로는 토끼들의 신앙과 신화인데, 인간처럼 토끼들에게도 “프리스”(의인화된 태양)라는 신이 존재하고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는 그들도 거기에 의지한다.
또 전설 속의 영웅인 “엘-어라이라”와 그의 충직한 부하 “랍스커틀”이 등장하는 신화들은 책속 이야기꾼인 “댄더라이언”의 입을 통해 여러 차례 서술되는데
그것 자체로도 꽤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이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토끼들의 생태에 대한 묘사인데,
애덤스가 록클리의 “토끼의 사생활”을 참고해서 책을 집필했기에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토끼들의 여러가지 생태(굴파기라든가 먹고 자는 기본적인 것들)를 엿보게 해준다.
나는 예전에 “토끼가 비를 맞고 죽었다”라든가 “토끼를 목욕시켰더니 죽었다”는 소리를 주워들어 토끼와 물이 상극인 줄 알았는데,
개처럼 강물에서 헤엄도 칠 줄 알고, 비를 맞아도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먹고 자고, 짝짓기하는 기본적인 본능의 모든 행동의 준거가 되는 토끼들의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 녀석들이 더욱 귀엽게 느껴진다.
분량이 많은 편도 아닌데 굳이 4권으로 분권해서 출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결국 나중에 단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완역판이 출간되기까지 나름대로 우여곡절도 있었다하니 이해하고 넘어가주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특히 3부 끝부분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인해 잠을 줄여가며 토끼들을 관찰했다.
너무 어리지만 않다면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 아닐까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