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0

삼십세
                                                  -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이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이제는 봄 기운이 완연히 느껴진다.

꽃 피는 계절이 다가오건만, 나는 왠지 마음이 무겁다.

서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아직 서른에는 못미치는 나이, 스물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한 나이이지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 가장 공감하는 게 20대 후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벌써 서른의 감성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런 요즘의 나에게, 우연히 접한 최승자 시인의,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는 표현은 너무나 큰 울림으로 머리를 때린다.

서른이라..

일전에 나이 먹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커져가는 것이라는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서른이 되면, 지금의 나는 더 큰 두려움을 갖게 되겠지?

두려움의 양적 증가라는 산술적인 차원이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되기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덜 자란 것일까?

 

“어느 누구도 늙었다고 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이” – 잉게보르크 바흐만
“서른은 온다. 막무가내로 온다. 갈피 못 잡는 여자여, 부디 정신 차려라.” – 시인 신현림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떻게 살 것인가 / 무겁고 씁쓸한 나이 서른” – 시인 김경진

Mar 19

디씨 도서갤에서 가져왔다.

내 실력 가늠하기

아래는 내 속도 측정 결과

역시 보통 수준이다.

측정 결과에 대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책이란 걸 굳이 빨리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속독해도 될 책과 아닌 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천성적으로 느림의 습관이 몸에 밴 탓도 있겠지만,

굳이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아니라면,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묘사된 풍경과 상황을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편안하게 해야하는 게 독서라고 생각하는 나의 독서관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장 여유롭고 행복하게 독서했을 때가 군대있을 때인데..

오후 일과를 대충 끝내 놓고서 저녁 먹기 1~2시간 전쯤에

바다가 보이는 휜히 트인 장소에 앉아, (부대가 섬에 위치한 탓이다)

쉴틈없이 불어대는 바람과 서서히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느끼며 즐기던 독서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빨리 읽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 이해 잘 하고, 기억도 더 잘하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내가 문제시삼는 건 속도에 대한 집착이다.

누군가와 빨리 읽기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남이 읽는 속도를 궁금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과 비교해보고 괜한 조바심을 내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은가.

사실 어느 누구라도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책이야 하루에도 서너권 읽기가 대수롭지 않지만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넘는 서양 철학서같은 경우 일주일동안 읽어도 다 못 읽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내용을 이해하며 끝까지 읽어낼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개는 읽는 도중에 나의 무지를 탓하며 책을 덮고 마는 게 나를 비롯한 일반인의 철학책 읽기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올해는 꼭 책 100권을 읽겠다”같은 계획은 절대 세우지 않는다.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그래서 난 책장에 한없이 쌓여가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나를 위협해도

절대 주늑들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도착한 책-_-;;

이 놈들도 당분간은 책장에 그냥 꽂혀있어야 하겠지만..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전 5권, 학교도서관을 원망하며 그냥 질러버렸다)
- 세계 호러 걸작선 (위의 ‘은하수…’를 구입하면 끼워주는 알라딘 이벤트 북)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Dec 14

원래 설문도 별로 안좋아하고, 펌질도 상당히 귀찮아하는데, 우연히 친구 블로그에서 보고 내용이 짧아서 퍼왔다.

사실은 시험공부해야 되는데 하기 싫어서 뻘짓 중이다. -_-;;

암튼 설문 시작~

1. 책상에 늘 꽂아두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 나는 책상을 늘 깨끗이 하는 편이다. 책은 책장에 있어야 한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이 아니라면 책상에 놔두지 않는다.
질문을 보아하니 늘 옆에 두고 수시로 뒤적거리는 책이 있느냐는 내용같은데,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가 없다.
가끔 책장 앞에서 책들을 헤집어 볼 때는 있다.

2. 어쨌든 서점에서 눈에 뜨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종류의 책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 경우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도 상당히 중요시한다. 마음을 확 휘어잡는 제목을 가진 책들은 대개 내용도 좋은 경우가 많다. 제목과 디자인도 책 내용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판단 요소라고 본다.

3.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 티핑 포인트, 홍당무, 국화와 칼, 그리고 읽다가 끝내 다못읽었지만 시뮬라시옹

4.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 솔직히 기억 안난다. 책을 1~2년 전에 처음 읽은 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딱 꼬집어서 언제 어떤 책이다라고 하기가 어렵다. 굳이 들자면 초딩 시절같다. 그 때도 내 인생에 있어 다독의 시기였으니까..

5.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데미안, 청소년기에 만났던 막스 데미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1984, 군대 있을 때 본 책인데 가끔 반추하게 될 때마다 조지 오웰이란 사람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올해 봤던 티핑 포인트도 나의 사고 전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6. 단 한 권의 책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는가?
- 1년을 버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1년간 1권의 책만 봐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상황이되면,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요즘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듯 하다)을 보면 될 것 같다.

7. 책이 나오는 족족 다 사들일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 없다. 좋아하는 작가는 몇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작가들의 작품을 다 구해서 읽지는 않는다. 책을 선택할 때 작가 이름은 잘 보지 않는다.

8.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 시뮬라시옹, 정말 너무나 놀랍고 새로운 개념을 다룬 책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철학자들, 그리고 철학책들을 아무렇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그리고 니체, 들뢰즈도 읽어 보고 싶다.

9. 헌책방 사냥을 즐기는가, 아니면 새 책 특유의 반들반들한 질감과 향기를 즐기는 편인가?
- 헌책이 주는 매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새책이 더 좋다. 요즘은 주변에서 헌책방을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시대가 변하면 책의 해석도 달라져야 하므로 가능하면 새롭게 번역된, 현실 감각에 맞게 재해석된 책을 보는 게 좋다고 본다.

10. 시를 읽는가? 시집을 사는가? 어느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가?
- 시집은 거의 사지 않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집이 땡길 때가 분명히 있다.
내가 가진 시집이라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이상의 “오감도”, 그리고 류시화 시인과 이정하 시인들의 책들..
어쨌든 지금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이정하 시인

11.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때와 장소를 시뮬레이션한다면?
- 최고의 때와 장소는 군대에 있을 때다. 이 때 만큼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한 시절이 없었다. 책 읽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평소에는 주로 등하교 하면서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본다. 민망스럽게 앞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게 싫기도 하거니와 짜투리 시간이 너무 아깝다.
집에서는 당연히 화장실에 갈 때다. 책을 보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화장실에 가는 경우가 많다;;

12. 혼자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주말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까페를 한 군데 추천해 보시라.
- 까페에 책보러 간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솔직히 북까페 아닌 이상 책 볼만한 분위기가 아닐텐데..

13.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는 편인가? 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가?
- 나는 단순한 인간이라 멀티 태스킹이 잘 안된다. 음악들을 때는 음악만, 책읽을 때는 책만 보는게 편하고 좋다.

14. 화장실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가? 어떤 책을 갖고 가는가?
- 이건 그 때 그 때 다르다. 보기 편한 잡지를 가지고 들어갈 때도 있지만, 그냥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님 PDA나 손전화기 들고 들어가서 e-book을 보기도 한다. 요즘에는 “자기를 다스리는 지혜”라는 책을 보고 있다. 단락 단락 호흡이 짧은 책이라 화장실에서 보기 좋다.

15. 혼자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가? 그런 때 고르는 책은 무엇인가?
- 원칙적으로 혼자는 밥을 안먹는다. 혹시 혼자 밥먹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냥 굶어버린다;;

16. 지금 내게는 없지만 언젠가 꼭 손에 넣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 너무 많다. 나는 늘 온라인 서점 책 보관함에 수십만원 어치의 책들이 들어있다. 나의 재력으로는 도저히 감당 안돼서 구매하는 것보다는 새로 추가되는 것들이 더 많지만, 언젠가는 그 책들이 모두 나의 책장에 꽂힐 날이 오겠지..

17. e-book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book이 종이책을 밀어낼 것이라고 보는가?
- 요즘 PDA로 지하철에서 “다빈치 코드”를 읽고 있다. e-book은 분명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휴대성은 정말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매력이 있다. 종이책은 분명 휴대하기 불편하지만, e-book은 결코 가지지 못할 향기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지금 상태로라면 종이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8.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 베스트 셀러는 웬만하면 보지 않는다. 스테디 셀러와는 달리 베스트 셀러는 책 내용보다는 마케팅의 힘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시일이 지나고 내 나름대로 판단이 서면 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내 선택 밖이다.

19. 보너스..
이문열 삼국지의 기록은 가나출판사의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해 깨졌는데, 그 정확한 판매 부수가 오리무중인 것도 기막힌 일이오. 출판사는 공식적으로 천 백만부 정도 나갔다고 신고했지만, 검찰에서는 장부에 없는 판매 부수가 그 두 배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고 하니까.. 책 많이 팔아 먹고도 작가에게 돈 안주고 버티다가, 작가가 고소하고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로소 출판사 오너가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하니 참…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워 놓고도 빼돌린 액수가 드러날까 무서워 판매 부수를 숨기고 있는 형국이오. 왕년에 조정래가 출판사에서 태백산맥 팔아먹고 인세 떼먹는다고 10 년 동안 소송을 벌였던 것처럼,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역시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까 하오

도갤에서 본 글이다. 나는 우리나라 출판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출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멍들어있지만,
그래도 책을 만들어내는 일을 공산품 제조와 동일시하는, 사명감없는 출판업계는 빨리 정신차리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라는 건,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온라인 서점들 할인 안해줘도 되니, 그 만큼 책값의 수준이 낮아졌으면 좋겠다.

괜히 하드커버로 양장본만 찍어서 비싸게 팔 게 아니다. 예전처럼 서점에서 날렵한 페이퍼북들을 발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