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A Time For Drunken Horses, 2000)
프랑스,이란 / 2004.08 / 드라마 / 80분
칸느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국제비평가연맹상 수상.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국경 마을, 바네(Baneh). 어머니가 막내를 낳다 죽고 밀수길에 나섰던 아버지마저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으면서 12살 난 소년 아윱(Ayoub)은 졸지에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꼬마 가장이 된다. 아윱은 학교까지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지만, 아픈 형 마디(Madi)의 약값을 치르고 나면 여동생 아마네(Amaneh)에게 새 공책을 사주기도 빠듯하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수술을 서두르지 않으면 마디가 몇 개월 못가 죽게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 아윱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밀수하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된다. 국경을 넘나들어야하는 밀수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해야하는 것은 물론, 밀수꾼을 습격하여 물건을 강탈하는 무장괴한의 위협을 감수해야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 게다가 사방에는 전쟁 중 양국에서 뿌려놓은 지뢰들이 깔려있어 언제 밟을지 모르고, 짐을 나르는 말과 노새들에게 술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도 견뎌내야 한다.
아윱은 이 모든 어려움을 참아내며 묵묵히 일하지만 제대로 품삯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다 못한 누나 로진(Rojin)은 마디를 수술시켜달라는 조건을 걸고 이라크로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간다. 로진과 신부 일행은 가여운 꼬마 동생 마디를 노새의 짐광주리에 싣고 눈발을 헤치며 이라크 국경까지 도착하지만, 신랑의 어머니는 노새 한 마리로 신부값을 치른 후, 마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돌려보낸다.
마디가 곧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만 아윱은 좌절하지 않는다. 아윱은 밀수꾼들을 따라 이라크로 가서 신부값으로 받은 노새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고, 마디를 수술시켜 데려오겠다는 계획으로 또 한번 밀수행렬에 합류한다. 마디를 노새 위에 싣고 밀수꾼들을 따라나선 길에 아윱은 매복한 무장강도들의 습격을 받는데…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게 하기 위해 술을 너무 많이 먹인 탓에, 취해버린 노새들은 위급상황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쓰러져버린다. ?밀수꾼들은 노새들과 밀수품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마디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노새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 없는 아윱! 아윱은 쓰러져 있는 노새에게 일어나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지만 술에 취한 노새는 꼼짝도 않고 무장강도들의 총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난 이란 영화를 좋아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향기”같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은 물론이고,
몇 년 전에 내게 아주 큰 감동을 줬던 “천국의 아이들”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다.
경제적으로는 아주 낙후된 곳, 그래서 첨단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맑은 영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 영화는 쿠르드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쿠르드족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흔히 쿠르드족이라고 하면, 총과 칼로 무장한 게릴라 집단을 떠올리지만 실상 그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역사를 통해 수많은 수난을 겪어야만 했던, 힘없는 소수 민족일 뿐이다.
(최근에 있었던 이라크와 미국 전쟁 때에는 과거 후세인이 쿠르드족 수십만명을 학살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쿠르드족 마을의 모습도 가난한 시골 마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막내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지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계를 위해 공부마저 포기하고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궃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아윱”의 모습을 보며,
동생 수술비를 벌기 위해 노새 한 마리에 거의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가게 되는 “로진”의 모습을 보며,
아직 어리지만 자신보다 오빠들을 먼저 생각하고 위할 줄 아는 “아마네”의 모습을 보며 가슴 한 구석에서 잔잔한 감동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에서 도적을 만나 도망쳐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너무 술을 많이 먹인 탓에 쓰러져 일어날 줄 모르는 노새에게
아윱이 일어 나라고 소리치며 우는 마지막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것은 영화지만, 분명히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라크와 미국간의 전쟁탓에 지금쯤 그 마을은 전보다 더 궁핍하고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한없이 서글퍼진다.
헐리웃 영화의 화려한 장면은 없다. 그러나 따뜻한 감동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