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1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겨버린 어느 청년의 이야기다.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영화화되어, 그 영화조차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졌을 만큼 대단한 고전 명작 소설이지만 아쉽게도 70년대 초에 제작된 영화라 구해보기도 쉽지가 않다.

헐리웃에서 21세기에 걸맞은 내용으로 새롭게 영화화를 시도하면 좋을텐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가 워낙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평이라 요즘 감독 중 과감히 그 명성에 도전할 만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알렉스라는 이름의 10대 비행 청소년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알렉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은근히 매력적인 악당인데다가, 온갖 비속어와 10대들의 풋내나는 말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으면서도 읽는 맛이 나는 작품이다.

악질 범죄자에 대한 새로운 교화 프로그램의 실험대상이 된 주인공이 범죄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윤리적, 법적 선택권을 박탈당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전혀 무겁거나 따분하지 않으면서 이런 주제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재주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내가 읽은 민음사판 책 표지에는 큐브릭 감독의 영화 포스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면도칼을 든 알렉스의 모습이 얼핏 보면 굉장히 섬뜻하게 느껴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의 모습 같아(물론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 그렇겠지만) 작품의 주제와 교묘하게 겹치면서 알렉스란 녀석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결말이다.

중반까지만 해도 “1984″나 “우리들” 같은 암울한 분위기의 디스토피아 소설을 연상케 했으나, 마지막 3부에서 원래대로 자유의지를 회복하고 유치한 과거를 조금씩 벗어버리며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알렉스의 모습을 보며 살짝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진다.

뭔가 분량이 좀 짧다는 느낌, 중반 이후에 이야기를 좀 더 긴 호흡으로 풀어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작품 전반의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ex libris >>

“선함이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란다, 6655321번아. 선함이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야.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거야.”

- p.100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 p.114

 

“선택은 말이오.” 어떤 굵은 목소리가 울려져 나왔지. 난 그게 신부의 목소리란 것을 알았어.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 거죠. 그게 진심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 이상은 아니지요.”
“그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예요.” 브로드스키 박사가 웃으며 말했지. “우리는 동기라든가 고차원적인 윤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범죄를 줄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요…….”

- p.150

 

“나, 나, 나. 도대체 나는 어쩌라고요? 난 여기서 뭐란 말이야? 내가 무슨 짐승이나 개란 말이야?” 이 말에 놈들은 큰 소리로 떠들면서 나에게 소리치기 시작했지. 그래서 더 큰 소리로 내가 외쳤지. “내가 무슨 태엽 달린 오렌지란 말이야?”

- p.151

 

“그러나 본질적인 동기는 죄 그 자체야.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거야.”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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