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03

첫번째 꼭지. 타임오프제와 최저임금 4,320원

90년대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드디어 이 땅에도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기반이 생겼다.

그 이전에, 수십년간 많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뤄낼 수 없었을 민주주의.

앞으로는 점점 나아져서 경제적인 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 선진국에 다가가리라 믿게 해주었던 민주주의.

그런데 요즘에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민주주의 시계가 어느 순간부터 거꾸로 돌아가는 듯 해서 한숨이 절로 나오곤 한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고 외치던 시대와 88만원 세대가 눈물짓는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7월 1일,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타임오프제가 시행되는 첫 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제도,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일방적인 제도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노조가 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노조나마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지금 담당자가 일하는 게 못미더울지언정,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사용자측에 전달해 줄 채널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이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않던가?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것이 없는 것 보다는 있는게 낫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노조의 행동을 제약하고, 힘을 제한하고, 목소리를 낮추려고 그들은 타임오프제를 시행한다.

귀족노조라고? 노조의 불필요한 파업과 태업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웃기지 마라.

제 아무리 귀족같은 노조라 해도 그들은 노동자일 뿐이다.

나는 지금껏 임원 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노동자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불사하며 사용자측과 대치하는 데에는 거기에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 밥숟가락을 들어 내 밥그릇을 지켜내겠다는 게 나쁜 것인가?

2011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은 시급기준으로 4,320원이다.

노동계가 주장한 1,070원 인상은 사용자측의 40원 인상과 부딪치다가 결국 210원 인상으로 결정되었다.

경총의 계산에 의하면 밥 한끼에는 820원, 통신료 3만원, 교통비 1만원.. 이렇게 한달 85만원으로 최저 수준의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트에 가봐라.

과자 한 봉지도 천원씩 한다.

도대체 820원짜리 식사는 어디서 먹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알기로 조만간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의 +200원 인상이 준비 중이다.

교통비 만원? 웃음도 안나온다.

하기야 법정 최저임금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아직 3천원대 시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어린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제 배불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가진 자들”의 이기심이 너무 추악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두번째 꼭지. 멕시코만 원유 유출

2007년 가을 즈음에 서해 태안에서 유조선에 의한 원유 유출사고가 났을 때, 전국적으로 태안 바다 살리기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었다.

당시에 막 회사에 들어간 나는, 회사측에서 파견한 단발성 봉사로 그 곳에 다녀왔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심각한 오염상태를 보며 ‘과연 이 곳이 전처럼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깊게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희생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난 겉으로 드러난 기름때일 뿐,

오만한 인간들이 잠깐의 실수로 어지럽힌 생태계는 제 모습을 찾는데에 훨씬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올해 4월 20일.. 미국 남부의 멕시코만에서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가 났다.

아니,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니 “나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영국 석유회사 BP의 원유 시추 과정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파이프가 파손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원유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것을 막아보려고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이 시도되었지만 아직까지 해결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 해결될 지도 모르는 대재앙..

그런데 웃기는 건, 주변 사람들 중에 이런 문제에 관심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안그래도 가뜩이나 신경 쓸 일도 많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 일까지 신경쓸 여유가 어딨냐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몇 승을 하고,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도 중요하겠지만, 제발 이런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같은 “지구인”이니까,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게 옳지 않을까?

 

세번째 꼭지. 월드컵

2002년 월드컵은 일종의 축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축구를, 월드컵을 좋아했던가 싶을 정도로 모두 붉은 광기에 물들어 축제를 즐겼다.

늘 쌓아두는 건 많고, 그것을 풀어줄 방법에는 익숙치 않은 우리 민족.

그래서 월드컵이라는 “풀 꺼리”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때마침 우리나라와 일본이 개최하는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은 그전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기량에 운이 더해져 4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고,

그렇게 월드컵과 붉은악마는 전 국민을 흥분시키며 하나된 외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8년..

나이 먹고 바라보는 이번 월드컵은 뭔가 다르다.

지난 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응원녀” 어쩌고 하면서 올라오는 기사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붉은악마”라는 순수한 서포터즈를 상업적으로 이용해먹는 서울시나 SKT, 현대차 등 일부 기업들의 작태는 비위를 상하게 한다.

순수함과 열정으로 가득찼던 거리응원은 8년 전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 이제 거리에는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양심이 뒹굴고 주인을 찾지 못한 성적 욕망들이 꿈틀댄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 일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중계권을 독점한 방송국의 태도와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있을 때 주요 현안들을 얼렁뚱땅 처리해버리는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다.

아.. 나는 그저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넋 놓고 보며, 마냥 즐거움을 느끼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8년 전의 그 때처럼 재미가 없다.

분명 귀를 거스르는 부부젤라의 소음 탓도, 오심으로 얼룩졌다는 심판 탓도, 실리 축구를 표방하며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는 팀이 늘어난 탓도 아니다.

8년 전의 그 때가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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