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8

내가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물론 그 보다 훨씬 어렸을 때도, 책장에 꽂혀있던 “일본 추리문학 선집”이나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인 김종성씨 등의 단편을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추리소설 한 번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읽은 건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읽었던 것들은 어린 내가 읽기에는 성이나 범죄 묘사 부분이 나이에 걸맞지 않다보니 내용 이해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재미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중학생이던 나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소년탐정 김전일”을 열심히 읽으며 탐정류 추리소설에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은 활자라는 제한된 정보를 통해 상상력을 극대화했을 때 그 재미가 큰 법인데, 글 보다는 그림이 중심이 되는 만화라는 매체는 도무지 상상력이 자리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 폭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가 분량의 한계 때문에 트릭이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허술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 무렵에 읽었던 책 중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있다.

아마 내가 읽어 본 추리소설 중에 가장 특이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는다.

눈길을 잡아끄는 제목, “살육에 이르는 병”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 1세대라고 불리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 작품이다.

키에르케고르의 <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 제목에서 따왔다는 데, 네크로필리아 (Necrophillia)인 주인공이 앓고 있는 정신병을 생각할 때, 정말 훌륭한 네이밍 센스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고른 것도, 마지막 한 페이지에 담겨있다는 충격적인 반전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이었다.

추리소설이란 늘 그렇듯이, 이 책도 깊은 몰입감을 주었고, 특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심인물인 히구치, 마사코, 미노루 세 사람의 관점에서 (가끔 시간 흐름을 거스르면서) 내용을 전개해나가는 구성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결정적으로, 책 뒷부분에 이르면서 어느 정도 트릭을 간파하게 되어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최강의 반전은 맛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지 않은 트릭을 교묘하게 짜 넣어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 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문고판 책 사이즈도 아주 마음에 든다.

단지… 책 속의 일부 묘사 장면이 지나치게 자세하고 잔인하기는 하지만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표지의 빨간 딱지는 계속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ex libris >>

이 도시의 어둠은 그 안에 아직도 무시무시한 짐승을 기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새삼 들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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