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31

가끔 들르던 인터넷서점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눈길을 잡아끄는 칼럼 제목..

나이 듦, 매일 새로운 나와 마주하는 일

관심이 생겨 글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내 또래인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가 “어쩜.. 이렇게도 내 마음이랑 같을까..”하는 공감을 자아낸다.

벌써 1월의 마지막날.

왜 이뤄놓은 것 없이 시간은 저 멀리 달아나기만 하는 것일까.

이미 나는 붙잡을 노력조차 포기해 버린지 오래다.

나는 “나이 먹는다”는 말과 “나이 든다”는 말의 차이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냥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바라왔던 모습대로 “나이 들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는다.

-

나이 듦, 매일 새로운 나와 마주하는 일
- 박혜진 ㅣ 2010-01-20

2010년이 시작된 어느 날, 오랜만에 가진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연신 즐겁게 함박 웃음을 짓던 나는 같은 자리의 지인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너 웃을 때 눈가 조심해야겠다.”

‘눈가를 조심하라니… 내 눈가에 주름이라도 자글자글 잡힌 다는 건가?’

이제 20대의 마지막 해에 다다른 나에게 나이에 대해 불안감을 얹는 말들이 하나 둘 쌓이고 있다.

스물 여덟부터 나는 이미 나이에 대한 고민을 해오고 있었다. 나의 고민은 미래, 진로 등 진취적 고민이기 보다 나이에서 풍기는 외모에 대한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가 못생겨진 게 분명해!’ 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칭얼대고 다녔으니 말이다.

사실 그 때는 모든 안 좋은 변화를 나이에서 오는 외모의 변화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일말의 관계도 없던 것을.

실제 숫자로써의 나이는 외모와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러나 많은 상황들이 그로 인해 크게 좌우된다. 마치 엊그제 같던 스물 한 살의 나를 떠올리자면, 지금 내 나이의 사람들이 무척이나 어른처럼 느껴졌었는데 그 땐 어른이 얼마나 감성을 억제하며 현실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었다.

어린아이가 순수한 것은 단지 어리기 때문이다. 충분히 순수하고 싶은 어른들은 나잇값을 해야 하고 아닌 척 살아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고 말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해가고 있다. 그것이 어느덧 9년째에 접어들었으며 아직 특별히 타인이 알아주거나 눈에 띄는 성공은 없었다. 그 사이 20대 중반을 지나고 점점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것에 매진할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다. 곧장 생계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 들었고, 현재 5년 차의 직장인이다. 꿈을 뒤로 한 채 생계를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던 세월이 4~5년 가까이 흐른 것이다. 가끔 직업에 대한 충분한 적응을 안도함과 동시에 그 적응되었음에 서글퍼진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하고 싶은 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것인데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와 모든 아버지들 또한 젊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꿈과 책임을 두고 끝없이 고뇌하였으리라.

우리는 그들의 흰머리와 깊은 주름이 나날이 늘어감에 안타까워하거나, 간혹 어리석게도 그들의 늙은 외모 때문에 같이 쇼핑하거나 즐기는 일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눈가 주름 속에서 ‘늙음’을 볼 것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새로운 날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모두 늙어갈 우리가, 나이 듦을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음을 광적으로 숭배하며, 늙음을 받아들여서는 안될 추함으로 멀리하려 한다. 젊음과 늙음이란 단지 구분의 문제에 불과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늙음이란 딱지에 벌레라도 물린 듯 자신을 긁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군들 늙지 않겠는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변하지 않는 꽃은 없는 법. 우리가 이렇게 젊음에 광분하여 시간을 되돌리려는 열풍에 시달리는 동안 정작 이미 ‘늙어 버린 이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만다. – < 노화현상의 두 측면>, 2006년 10월. 잔뒤군.

스무 살은 열일곱 시절을 그리워하고 스물 다섯 살은 스무 살 때를 그리워한다.

열입곱의 소년, 스무살의 청년. 누구도 영원히 머무는 나이가 없음에도 보다 더 ‘젊음’을 갈망한다.

간혹 5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좀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때 상황에서 지금 아는 것처럼 알고 행동하여 다른 인생을 꾸려 갈 수 있었을까. 그 때 몰랐던 많은 것들을 체득한 현재의 나이기 때문에 더욱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2008년 개봉작 < 로큰롤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평균나이 81세의 밴드 ‘영 앳 하트’가 출연한 화제작이다. 실제 밴드인 ‘영 앳 하트’ 멤버들은 최고령 93세인 백발의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호흡기를 꽂고 노래를 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 분들의 열정이 마음으로 전해져서 이다.

cold play의 fix를 열창하며 행복에 가득 찬 그 분들의 모습은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열정으로, 서른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스스로의 젊음을 부끄럽게 한다.

어느 때를 그리워하기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년 후, 살아지는 대로 발전없이 늙기만 했다는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새롭게,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발전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성숙하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Leave a Reply

What is 2 + 7 ?
Please leave these two fields as-is:
IMPORTANT! To be able to proceed, you need to solve the following simple math (so we know that you are a hu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