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암소 런치의 여왕 ランチの女王
Jun 12

일찍이 싯다르타는 인간이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했다 한다.

죽음.

태어남이 있기에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어떤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해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생과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

굿’ 바이 : おくりびと : Good & Bye.

우연찮은 계기로 납관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한 남자의 시선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다.

올해 봤던 영화 중에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서 오랜만에 끄적여 본다.

어려서부터 첼리스트의 꿈을 키워나갔던 주인공은 대도시 도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단원으로 활약하며 그 꿈을 이룬 듯이 보이지만,

관객 동원을 못하는 인기 없는 오케스트라의 해체로 인해 졸지에 실직자가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는 젊은 나이에 귀향을 결심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밖의 계기로 인해 납관사가 되어 간다.

처음에는 부패한 시신을 보고 구역질하기 바쁜 그이지만,

점차 유족들의 슬픔과 회한을 먼저 이해하려 하고, 유족들의 모습과 고인의 남겨진 영정 사진을 통해 누군지도 모르는 그의 삶을 반추하며 그의 인생을 존중해주는 진정한 납관사가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의식 변화를 따라 관객은 생과 삶이라는 가장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현실문제이자 삶의 과정 내내 따라다니는 철학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볼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내가 접한 부분은 분명히 단편적인 부분이겠지만,

내가 아는 일본영화의 힘은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데 있다.

이 영화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일상의 한 단편이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납관사 이야기를 통해 그런 일본영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가 나아갈 바는, “디워” 처럼 어설프게 서구식의 블록버스터를 흉내내는 것 보다는,

“라디오스타” 처럼 내러티브의 힘을 이용해 관객을 끌어내는 데 있다고 보는 나로서는 이처럼 다양한 소재를 담아내는 그네들의 영화 산업과 그런 영화들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관객들의 안목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물론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기술적인 부분의 진보를 이뤄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기술적 차원에서 서구의 거대 영화자본에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것도 우리 영화계의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화 저변에 깔려 있는 무거운 듯, 슬프게 들리는 첼로 선율은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전직이 첼리스트였다는 설정을 통해, 관객들은 첼로와 납관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고

어느 틈엔가 둘의 자연스러운 앙상블을 통해 묘한 미학적 쾌감을 얻게 된다.

어째 BGM이 좋다 했더니, “히사이시 죠”가 음악을 맡았다고 한다.

결혼 후, 팍 늙어버린 듯한 “히로스에 료코”의 모습에 다소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기에 이 영화에는 너무나 멋지게 녹아들어 간 것 같아서 한 편 다행이었다.

그래도 예전 영화에서의 엉뚱한 듯, 발랄했던 모습들이 생각나 그립긴 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