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4

시칠리아의 암소.

고대 시칠리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사형 도구.

이 사형 도구를 만든 사람이 첫 희생자가 되었다고 하니 왠지 프랑스의 ‘기요틴(단두대)’을 떠올리게 한다.

악동 진중권이 쓴 글을 묶어낸 ‘시칠리아의 암소’는 그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도덕 군자들의 비도덕을 비웃으며 한줌의 부도덕으로 새로운 에토스를 창조하는 글쓰기. 문체의 무거움 속에 은폐된 존재의 경박함을 드러내며, 새털처럼 가벼운 문체 속에 정신의 무거움을 은폐하는 글쓰기. 인정이라는 가면 뒤로 숨은 잔인성을 드러내고 공공연한 공격 속에 인간의 조건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감추는 글쓰기. -p.270)에 의해 쓰여진 그의 초기 작품이다.

그가 “불편한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그 글쓰기 목적에 대해 설명하는 글도 있고,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며 고백(?)하는 글도 있다.

출간된 지 10년 가까이 된 책을 굳이 지금 꺼내 읽는 내 취향도 고약하지만,

그 글들이 지금도 그대로 현실을 가감없이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고약하게 느껴진다.

강산도 변하게 한다던 10년이라는 세월은 이 땅을 조금이나마 “진보”하게 만들기에는 너무 짧은가 보다.

 


ex libris >>

민주주주의란 머릿속의 관념이나 입술 위의 구호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 속에 먼저 기입해야 할 실천적 원리로 존재하는 것이다.

- p.36

 

어느 동물학자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의 공격성은 초식동물의 뒤를 쫓는 사냥꾼의 그것이 아니라 외료 육식동물에게 쫓기는 사냥감의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던 어느 병사에 말에 따르면 당시 한국군 병사들의 심리는 “언제라도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상황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 p.73

 

공포는 인간을 문명 이전으로 되돌린다. 아니, 공포라는 것이 실은 원시인의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포는 이성을 잃게 만들고, 이성으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 공포의 대상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잔혹함을 보여주게 된다.

- p.74

 

‘보수’라는 호칭은 거저 먹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는 이제라도 제 전통을 세워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애국주의, 민족주의, 공동체를 위한 봉사, 도덕적 청렴과 같은 가치들을 실천해나가면서 그것을 전통으로 만들 때, 한국의 보수는 비로소 이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얼마나 한심하면 우리가 이런 보수적 가치의 목록까지 제시해줘야 하겠는가.

- p.105

 

과거의 이들의 정치 참여는 그저 집권자에게 입술 서비스를 해주고, 그 대가로 떡고물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 시절에는 언론사들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 항상 ‘상수(常數)’였다. 하지만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그 대상은 ‘변수(變數)’로 바뀌게 되었다. 즉, 그 전의 언론이 독재정권의 입을 대변해주는 데 그쳤다면, 오늘날의 언론은 직접 제 구미에 맞는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창조적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행태는 비슷해 보여도 그 행동에는 이런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 p.142

 

“시뮬라크르는 그릇된 복사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by 질 들뢰즈, 『의미의 노리』

- p.148

 

민주화란 정권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더 깊은 의미에서 민주화란 사회적 소통의 쌍방향, 사회적 소통의 평등을 의미한다. 인터넷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 p.165

 

지나친 급진성은 자칫 결과적 보수성을 낳을 수가 있다.

- p.189

 

‘Errae humanum est(실수는 인간적이다)’라는 문장. 그 세 단어의 앞 자만 따면 ‘Ehe’, 독일어로 ‘결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실수는 인간적이다.

- p.208

 

에세이스트 고종석 씨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원래 관계의 상하를 나누었던 ‘Sie/Du’라는 대명사가 점차 관계의 ‘친소(親疎)’를 가리키게 된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 나라에서 인간관계의 평등화에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우리말의 복잡한 존칭체계인지도 모른다.

- pp.216~217

 

‘나이에의 논증의 오류.’ 바로 이것이 ‘대인 논증(논거 대신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는 오류)’이나 ‘논점일탈의 오류(사소한 표현의 부적절을 물고 늘어지며 논점에서 도망가는 오류)’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토론과 논쟁의 문화를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오류다.

- p.220

 

나는 젊은이든 나이가 드신 분이든, 모두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추체로 서로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나이 드신 분들을, 그냥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 분들이 살아오신 험난했던 삶 때문에 존중해주고, 나이 드신 분들은 제발 ‘나이’를 논거로 삼지 말고 젊은이들을 의견을 가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위계질서는 무너졌으니 막 가자’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무너진 위계질서의 자리에 ‘서로 상처를 안 주며 교통하는 합리적이고 우아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 pp.221~222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그 권력화를 우려할 만큼 강력한 좌파정당이 없다. 그런데도 맥락 파악 못하는 우리의 탈근대주의자들은 지레 ‘대의제’에 입각한 정당의 한계를 성토하기에 바쁘다. 욕을 하려면 먼저 욕할 대상을 만들어놓으라. 그게 순서다.

- p.244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법칙을 완전히 지배하는 자만이 자유로이 ‘유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257

 

나는 거기서 어렵지 않게 눈에 뵈지 않는 권력 관계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 하나도 웃기지 않는 썰렁한 농담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자. 권력은 그 자에게 있다.

- p.259

Tags:

Leave a Reply

What is 7 + 5 ?
Please leave these two fields as-is:
IMPORTANT! To be able to proceed, you need to solve the following simple math (so we know that you are a hu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