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8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는 타이틀 보다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 이름 보다는,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읽은 책이다.

90년대 유행하던 “최불암 시리즈”도 아닌데, 왜 요즘 자꾸 빨간색이 좋아지는 지 모르겠다.

추리소설인지 연애소설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작품은 15C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나에게는 조금 생소한 소재인 “세밀화”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그 살인사건에 배후에 자리한 동서 문화의 충돌, 문예 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신구 세력 간의 갈등, 초상화와 우상숭배 등 민감한 종교적 이슈 등을 다루고 있다.

워낙 세계사나 예술 쪽과는 담 쌓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오르한 파묵이 묘사하는 소설 속 세계는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었고, 그래서 조금은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수월하게 읽힌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중심 소재인 세밀화의 경우, 삽화가 전혀 없다보니 글로만 묘사된 그림을 상상하며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읽는 재미만큼은 많이 감소된 듯.

그래도 가깝지만 먼 나라 “터키”에 대해서 꽤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내용 면에서는 터키의 전통 문화를 고수하는 세밀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형태적인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가 눈에 띄는 독특한 소설.

그나저나 터키란 나라도 상당히 매력적인 것 같다.

나중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

 


ex libris >>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

- 上권 p.110

 

정말로 불행한 일은 늙어서 추해지고 남편이 없거나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나를 질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上권 p.156

 

이 도시가 크고 휘황찬란한 만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있는 장소도 그만큼 많을 것이고, 도시가 사람들로 붐비는 만큼 각자의 죄도 서로 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떤 한 도시의 지적 능력은 그 도시의 학자들과 도서관, 세밀화가들, 서예가들, 그리고 이슬람 학교의 숫자가 아니라, 어두운 거리에서 수천 년 동안 교활하게 저질러진 살인의 횟수로 계산해야만 한다.

- 上권 p.178

 

그렇게 해서 그는 악마가 우리를 죄악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그렇듯이,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향한 갈망에 이끌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았다.

- 上권 p.191

 

그 슬픈 시선에는 모든 도제들이 아는, 오직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즉 환상을 꿈꾸지 않으면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 下권 p.288

 

갑자기 세상이 서로 통하는 문이 달린, 수많은 방을 가진 궁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기억하며, 상상하며 드나들 수 있지만, 대부분 게을러서 조금만 움직일 뿐 항상 같은 방에 머무르고 있는 거지요.

- 下권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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