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빌(Dogville)
- 감독: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 주연: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 장르: 드라마
- 제작년도: 2003년
그냥 어쩌다 접하게 된 영화.
생각없이 보게 된 건데, 보통 영화의 1.5배는 되는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서 보았다.
간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부르는 영화였던 것 같아, 잠깐 끄적여 본다.
아래에 씌여진 글은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독특하다.
영화가 프롤로그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화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되는 프롤로그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 도그빌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 소개된다.
그런데..
화면을 채우는 것은 우리가 영화에서 익숙하게 봐오던 셋트가 아닌 무대장치들이다.
사람들과 주요 소품들만 드러날 뿐, 거리도 나무도 그저 글로 표현될 뿐이다.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으나 구성과 무대장치는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미장센(Mise-en-scene)은 원래 무대의 구성을 뜻하는 연극 용어이다.
그것이 영화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영화 프레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결합을 아우르는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미장센이 다시 본래의 의미로 회귀한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영화에서 사용된 챕터 구분은 장면의 전환을 통해 작중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단절시켜 변화의 속도감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가식이 사라지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편으로는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의 셋트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하고, 마지막에 마을 주민들의 몰살과 방화를 통해 도그빌이라는 마을 자체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도그빌이라는 마을이 실존하는 곳이 아닌, 그레이스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삶의 체험이라는 순간의 상징으로 남도록 만든다.
인간의 본성은 추악하다.
자신의 추악함이 드러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스에게 개목걸이를 씌우고 그녀를 노예처럼 다룬다.
타자의 약점을 빌미로, 타자를 이용하려는 추악한 본성.
그레이스는 그걸 부정하고, 그 때문에 아버지와 다퉈 “도망자가 아닌 도망자”가 된 것이지만
도그빌에서의 은거 생활을 통해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몸소 느끼게 되고, 결국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이론으로 무장했으나, 결국 그 자신이 추악함의 상징이 되어 버린 “톰”에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Good bye, Tom.”이라는 짧은 대사에는 그녀가 과거의 자신, 자신의 가치관에 남기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있다.
영화를 보며, 요즘 시끄러운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떠올렸다.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짐승들의 흉악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로 시끄럽다.
과연 인간은 교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인간은 존엄하다면, 존엄한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가되고 처벌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는 도그빌 사람들을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레이스의 결단처럼, 그들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긴 러닝 타임 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