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6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에뜨랑제(이방인)로 살아가는 소년 “모모”와 그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유래없이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최고의 작가로 이름을 알리지만 “로맹 가리는 이제 끝났다”는 문단의 평가를 비웃으며,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의 신인 작가를 탄생시켰고,

그 이름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 수상을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뒤엎는다.

물론 그의 사후에 발견된 유서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게 되지만, 기성 작가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던지려던 그의 기행은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그에게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을 안겨준 작품이, “자기 앞의 生(La Vie devant soi)”이다.

열 살에서 더 나이를 먹지 못한 주인공 소년 모모, 그는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부모의 애정과 관심은 커녕 부모의 얼굴조차 알지 못한 체로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간다.

그가 변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콜레라”처럼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창녀의 자식, 아랍인이라는 에뜨랑제의 운명을 타고 났고, 창녀의 자식을 전염병처럼 바라보며 피하려 하고, 격리시키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과 그가 살아가는 프랑스 사회,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의 선입견에 반항한다.

그는 어리지만 생이라는 게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생이라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체득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조금씩 “두려움”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거리낌을 가지고, 두려움을 느끼며 우리는 성장한다.

이미 오래 살아서, 많은 경험을 했기에 인생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가진 로자 아줌마의 말처럼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우리가 한 해 두 해 해를 더해가며 세상을 알아갈수록 두려움도 그에 비례해서 조금씩 커져나가기 때문일 뿐..

 


ex libris >>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법이다. 예컨대,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 따위.

- p.37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철학자 흉내를 내느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 p.61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 p.69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 p.93

 

나는 콜레라에 대해 잘은 몰라도 롤라 아줌마의 말처럼 그렇게 구역질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그저 병일 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나는 때로 콜레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적어도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된 것은 콜레라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라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

- p.158

 

그녀는 무척 차분해 보였다. 다만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275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끝)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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