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3

김규항은 독설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쉽사리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지 못하는 그는 비관론자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기독교 신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B급이라고 낮춰서 칭하고는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좌파 다운 좌파다.

3년 전쯤에 나는 왜 불온한가라는 책을 통해 그의 삶과 종교관, 진보에 대한 생각을 접했을 때는 2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면서 나를 벗어나 내 주변의 것들에 조금씩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챙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더할 수 없이 순수했었고,

그래서 그것이 돈이든, 힘이든, 지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고, 그런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이지 잘 모르면서도, 나는 “보수” 보다는 “진보”에 더 호감을 느꼈고, 자연스레 진보라는 단어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따라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이제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는 “B급 좌파”라는 책을 구독한 것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 당시의 “순수”가 많이 씻겨진 나를 좀더 선명한 색조로 채색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파쇼화 되어 버린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나를 자극했기에..

 


ex libris >>

아무래도 이 나라는 봉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윗줄에 있는 놈들은 여전히 ‘마님’의 교양(사람의 귀천은 하늘이 정한 것이며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을 유지하고 아랫줄에 있는 이들은 여전히 ‘머슴’의 교양(모든 것은 운명이며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죽은 듯이 일한다)을 간직하는 것 같다.

- pp.63~64, 「교양」

 

도무지 < 한겨레>와 구분할 수 없는 이 공평무사한 표현은 < 조선일보>와 그들의 보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 그것은 그들의 보수 사상이 세상을 판단하는 신념 체계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혹은 더 많이 가지려는 동물적인 욕망 체계이기 때문이다. (…) 새삼스런 얘기지만, 보수 사상이 진보 사상과 대립한다 해서 보수 사상을 진보 사상과 같은 층위에 놓는 일은 터무니없다. 그것은 순수한, 매우 순수한 욕망이다.

- p.96, 「에덴의 왼쪽」

 

따져야 할 일은 선생과 학생 사이의 권위적 질서가 아니라 인간(선생이라는)과 인간(학생이라는) 사이의 인격적 질서이며, 지켜야 할 건 ‘교권’(선생만의)이 아닌 ‘인권’(선생과 학생의)이다.

- p.104, 「영감과 빠가사리」

 

톨레랑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의구심은 그게 어디까지나 프랑스 국내용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프랑스의 톨레랑스는 프랑스인인 사르트르에게만 적용될 뿐 정작 당사자인 알제리 민중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톨레랑스가 좀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려면 제국주의 출신 국가 프랑스의 국민만의 것이 아닌 전세계 민중들의 것이어야 한다. 톨레랑스에 대한 또 다른 의구심은 우리가 프랑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관용이 아니라 분명한 청산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치부역자에 대한 가혹한(적어도 우리 기준에서) 처단은 프랑스의 자존을 유지하게 했지만 친일파에 대한 철저한 ‘관용’은 한국을 망가트렸다.

- pp.118~119, 「톨레랑스」

 

언제나 그러하듯 보수는 오늘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고 극우는 오늘의 이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 p.148, 「글쓰기 1.5년차의 단상」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성찰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예수가 보여주었듯, 세상을 바꾸는 삶이란 대개 자신을 망가트리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 p.160, 「도량」

 

예수는 이천 년 전 우리에게 해방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이천 년째 예수에게 욕망을 요구한다.

- p.188, 「예수」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하게 살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03, 「B급 좌파」

 

몇몇을 빼고라면 오늘 우리 앞에 선 의사들 가운데 히포크라테스나 허준의 정신과 연관된 어떤 특별한 직업관을 가진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최근에 발견된 그들의 특별한 직업관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선 사람이 죽어나가도 좋다는 숭고한 신념이다.) 알다시피 그들이 의사가 된 이유는 단지 사회의 상층부에 살고 싶은 욕망에서였고 그들의 모든 관심은 그 욕망의 실현 여부에 있다.

- p.220, 「돌팔이」

 

역사는 언제나 사로잡힌 현실에 반대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전진한다.

- p.236, 「꿈」

 

억압의 상태에서 싸우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순결해진다. 어떤 졸렬한 인간도, 억압의 상태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순간 가장 순결해지는 것. 우리가 사람인 이유이자 역사에 절망하지 않는 이유다.

- p.268, 「장진구에게」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모든 생산이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p.271,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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