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며 잃는 것도 많지만, 삶이 덧없지만은 않았는지 어렸을 때는 결코 체득할 수 없었던 삶의 기술들을 하나씩 배워가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어떤 현상을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쁜 상황에서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로움인지, 단지 어렸을 적의 순수함을 잃고 점점 의심만 늘어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0대~20대 초반의 나를 돌이켜보니 분명 그런 기술이 생긴 것 같기는 하다.
첫번째…
어제, 사업 실패 때문에 수십억원의 사채빚에 시달리던 모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그 배경이 어찌 되었든,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던 만큼 저 세상에서는 편히 쉴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삼가 고인께 명복을 빕니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 게시판을 통해 엿보이는 일부 누리꾼들의 생각들은 나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했다.
마치 그 연예인이 진 채무가 사채이므로 그 배우자가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변제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식의 논리였다.
지상파와 케이블TV를 통해 연일 방송되는 대부업체들의 CM도 거슬린다, 상속포기를 통해 채무 변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연예인의 자살 문제와 채무 문제를 별도로 분리해서 냉정히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렸으면 응당 갚아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물론 불법 사채업자는 나쁘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뿌리 박지 못하도록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이자로 “가지지 못한 자”를 더 옥죄고, 불법 추심으로 채무자의 삶까지 망쳐놓는 그들은 분명 지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채업자가 불법 사채업자는 아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연예인의 지인이 간곡한 부탁을 져버릴 수 없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사업자금을 대줬을 수도 있다.
개인간의 금전대차계약으로 빚어진 채무이므로 이 경우도 “사채”다.
사채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사채를 사용하고,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왜 제도권 금융이라는 안전하고 저렴한 수단을 버리고 그쪽으로 발길을 향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저런 식의 몰아부치기식 사고는 지양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 너무 한쪽으로만 흐르는 생각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맘껏 배설해 보았다=_=)
두번째…
요즘 나는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회사일을 땡땡이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땀을 쏟고 있다.
예비군 훈련장에 직접 다녀온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매체를 통해 많이 다뤄졌으니 우리나라 예비군의 실상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역병인 조교의 통제에는 아랑곳 않고 제멋대로 오합지졸인 예비군들..
지금은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서, 어렸을 때 TV 희극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다뤄지던 예비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통제하려는 자”와 “더 이상은 통제받고 싶지 않은 자” 사이의 간격은 아직도 존재한다.
사실.. 여기서 하려던 말은 이런 게 아니고..
나는 무슨 신념(?) 같은 건 아니지만,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언제나 조교들(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존칭을 사용한다.
그들이 나를 선배님이라고 존칭하고 다/나/까로 끝나는 군대식 존칭어를 사용하는 이상, 나 역시 그들을 후배님이라고 부르고, 요로 끝나는 말을 써준다.
그들도 집에 가면 귀한 아들이고, 누군가의 좋은 형/오빠일 텐데 나에게 그들을 함부로 대할 권리 따위는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어딜 가서 모르는 사람에게 (단지 나이가 나보다 조금 많다는 이유로) 반말을 들으면 발끈~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괜히 군복만 입혀놓으면 이유없이 거들먹거리며 비뚤어진 지배욕을 드러내려는 마초의 습성을 혐오하는 까닭도 있다.
아무튼.. 이번 예비군 훈련 때도 그랬다.
나는 변함없이 조교들과 PX병 등 내가 만나는 병사들에게 존칭을 써줬다.
그런데 오늘 문득.. 다소 짓궃은 태도이기는 하지만 조교들에게 반말하며 웃고 떠드는 몇몇 예비군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런 것도 친밀감을 드러내는 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의도와 상황인데, 그냥 동네의 아는 동생처럼 생각하고, 서로 웃고 즐길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로 반말하며 장난치는 건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저 병사도 존칭을 사용하되 조용하고 재미없는 나 보다는, 반말을 쓰더라도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더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
뭐가 옳은지 그른지는 모른다.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좀 빗나간 얘이긴 하지만 성희롱(성추행)이란 범죄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때 성립하는 것처럼, 이 경우에도 내가 그 조교들의 입장이 되지 않는 이상 어떤 태도가 더 바람직한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지금껏 고수하던 내 신념 아닌 신념이 흔들리는 걸 보니,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끄적거려 보았다.
사실 나이먹은 건.. 별 것 아닌 훈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는 나의 저주받은 체력에서 더 많이 느끼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