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여,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
그러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누군가 물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여,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
그러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마지 못해 대답했다.
“그대를 찌껄이게 하기 위해서다.”
어릴 적에 탈무드라는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다. (어디까지나 기억에만 의존해서 재구성한 관계로 내용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서양 철학에 남긴 철학사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침묵이라는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끄집어내어 보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굉장히 과묵하고 조용한 소년이었다.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대화보다는 침묵과 들어주기(경청했다기 보다는 그저 듣는다는 기능적인 면이 더 강했으므로)로 타인과 지극히 소극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곤 했었다.
그래서 “내 얘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거나 “너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하다”는 식의 칭찬(?)을 또래 친구들로부터 듣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며, 말이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귀는 점점 좁아지면서 어느 틈엔가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평가와는 멀어져버린 것 같다.
내 세치 혀의 섣부른 놀림 때문에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이지 않는 무신경한 나를 어느 순간 문득 깨닫고는 흠칫 놀라기도 하니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직장 상사분이 좋은 책이라며 읽으라고 건네주신 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어느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법한 이 책을 집어들 일은 없었을 지 모른다.
그리고 그랬다면, 아마도 나는 커가면서 잃어버린 “들어주기”의 무게감을 다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 자체는 사실 가슴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베스트셀러 냄새가 너무 짙게 배어나오는 책이었으니까..
그러나 “경청”이라는 제목이 주는 짧지만 큰 울림은 아직도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ex libris >>
“하나는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아라비아 속담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경구입니다.”
- p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