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3

(다시 시작!)

2월 2일 오르차

18시간의 시체놀이..
가장 오래 기차를 탔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때의 기차 여행이 기억에 남는 것은 18시간이라는 승차 시간 때문이 아니었으니,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갑을 채운 범죄자 셋과 함께 탑승한 무장경찰들(범인 호송에 일반 열차를 이용한단다), 군 작전상 이동을 하는 건지 이것 저것 잔뜩 짐을 챙겨들고 기차에 올라탄 군인들 무리, (비록 낮잠을 자는 중이었지만)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건드려 깨워놓고서는 음식을 사먹으라고 내미는 상인…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열심히 잠을 잤고,
전공책을 펴들고 공부하는 여학생은 독서 삼매경이었다. (이것이 인도 IT의 힘인가?)

햇빛을 받으며 출입구 쪽에서 기차 밖 풍경을 구경했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조용한 전원 풍경을 보며 바람과 햇볕을 동시에 받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기차는 목적지인 ‘잔시’에 도착했고, 우리를 맞는 것은 시골역의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이 아니라 역 앞은 가득 메운 온갖 호객꾼들이었다.
릭샤, 템포, 사람, 호객꾼이 한 데 어우러져 오랜 기차 이동으로 피곤한 몸에 짜증이 몰려왔다.

겨우 겨우 템포를 갈아타고 목적지인 ‘오르차’로 향했다.
정말 친절한 인도 아저씨 덕에 요금도 현지인 요금으로 해결~
이런 친절맨을 만난게 얼마만인가+_+

한참을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오르차지만,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 없는 조용한 비경에서 쉬다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작은 시골 마을에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은 건지.
특히 한국사람들;;
식당들마다 어설픈 한국 메뉴/한글을 내놓고 열심히 호객하는 모습이 좀 안타까웠다.(거기다 한국 음식은 정말 맛없다;)

이날은 특별히 관광은 하지 않고, 숙소를 잡고 좀 쉬기로 했다.
그런데 우릴 기다리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첫번째는 전화하러 가서 일어났다.
나 혼자 전화 가게에 가서 약 5분간 통화를 했다.
그런데 이 곳은 시스템이 다른 곳과 달라서, 내가 직접 번호를 눌러 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매니져(?)같은 녀석이 교환수에게 전화를 걸고, 내가 적어준 번호를 불러주면 연결되는 묘한 방식이었다.
그랬는데, 청구된 금액이 엄청난 바가지 요금인 140루피- _-;
가뜩이나 전화 내용이 썩 기분좋지 않았는데, 너 잘 만났다..
처음에는 영수증이나 기타 증명할만한 문서를 보여달라고 따졌다.
나는 기계와 문서는 믿지만 너희들 인도사람은 안믿는다고..
그렇게 한참 실랑이 하다보니 어디서 영수증 비슷한 걸 가지고 왔는데, 잉크를 물에 희석해서 쓰는지 글씨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 핑계로 또 따졌다.
한참 따지다보니 지들이 요금 계산 잘못했다며 88루피란다;
이번에는 왜 속였냐며 또 실랑이..
지들도 답답했는지 나중에는 그냥 돈 내지 말고 가라길래, 그건 불합리한 일이라며 돈을 내겠다고 또 싸웠다.
다른 녀석도 끼어들고, 이리 저리 한참 알아보고 나더니 결국 63루피(전화회사에 주는 원금이란다)를 제시해서 그것만 주고 나왔다.
그 정도면 다른 곳 요금과 비슷하니까..
30분 이상 버틴 보람(?)을 느끼며, 역시 인도애들 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경험이었다.

그리고는 저녁때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
야외식당(조명 없는;)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가 되었는데 얘들이 돈이 찢어져서 안받는다며 2번이나 태클을 걸더라.(원래 인도애들은 돈 찢어지면 절대 안받는다)
그러더니 결국 500루피 고액권을 가져가고는 무소식..
우리는 거스름돈 가져오기를 기다렸으나 전혀 무반응- _-;
우리를 보면서 비웃는다고 오해한 창락이가 갑자기 카운터로 가서 멱살잡으며 분위기 험악해지고;; 나는 그 와중에 지갑을 다시 확인해보고 나의 실수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어두워서 100루피 주고서는 500루피 줬다고 혼자 착각했던 거다.
하마터면 싸움이 날 뻔했던 X팔린 경험.

이래서 잔뜩 기대하고 갔던 ‘오르차’는 나에게 완전히 비호감으로 찍혀버렸다.

 

2월 3일 오르차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작지만 소박한 오르차를 둘러봤다.
50루피를 내면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고 사진도 맘대로 찍을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즐겼다.














가장 큰 볼거리이자 인도 전역에서 가장 싼 궁전 호텔이 있는 곳이었지만, 결국 구경만 하고 나왔다;

왼쪽은 식당들, 오른쪽은 은행!

다른 유적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장인데, 규모도 작고 딱히 살만 한 것들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다른 유적들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크슈미 나라얀 만디르’







올라가며 정말 후덜덜;;

막상 올라가면 겨우 요런 풍경을 보여준다;

내려가며 또 후덜덜;;;



짧은 관광 마치고 컴백.
도시 규모에 비하면 제법 유적이 많았지만, 관리 상태도 썩 좋지 않았고 1류 관광 명소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되고 낡음과 고풍스러움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곳이라고나 할까..

오르차에서 마지막으로 밥을 먹으며 팔자 좋은 개 구경+_+

도끼를 너무 자연스럽게 들고 다니던 아줌마;

맨손으로 전기줄 만지던 아저씨;;

서양사람 무리가 지나가다 열씸히 사진들을 찍길래 나도 한 컷.
그냥 색소 사진인데, 그들 눈에는 색감이 고와보였나보다.
나중에 3월 홀리 축제 때 맹활약하게 되는 그 색소;;;였지만 이 때는 전혀 관심 밖의 물건이었다.

잘 있어라, 오르차여..

점심을 먹고 오르차를 출발, 다시 템포를 타고 나가서 카주라호행 버스를 탔다.
템포를 내리자마자 버스가 있어서 우리는 너무 반가웠으나, 사실은 그 버스가 손님을 다 채울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서 괜히 몸만 더 지치고 말았다.
짐값을 따로 요구하는 기사와 또 열심히 싸웠다.
같이 탔던 일본 사람은 내렸다 타기 신공까지 펼치며 우리보다 더 잘 싸우더라;;
중간에 버스가 잠깐 정차를 길게 했는데, 마침 우리에게 친한 척 접근해 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한 명은 땅콩을 파는 소년이었다.
사심 없이 사진 찍히는 걸 좋아라 하는 싹싹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괜찮은 녀석같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 능숙한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청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니키”였다.
정말 한국말을 잘 한다.
내가 여행하면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더 경계하게 되었지만..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 하냐고 물으니 한국인 친구가 있단다.
우리 보고 어디 가봤느냐, 인도가 어떠냐고 묻더니, 급기야 “인도 사람 어떠냐”고 묻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몇 명은 정직하지만, 속이는 사람, 바가지 씌우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고 하니, 그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고, 한국 사람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대꾸하더라.
그래,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니들은 좀 심하지 않니? 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괜히 말이 길어질까봐 삼켜버렸다.
괜히 이런 저런 말을 걸고, 먹을 것도 권하는 친절을 보이길래 우리는 “또 낚으려고 하는군- _-+”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고,
아니나 다를까 내릴 때쯤해서 우리에게 숙소를 권하며 명함을 주더라;;
그래도 내가 했던 말이 걸렸는지 강요하는 태도는 아니었고, 왠지 모르게 슬픈 눈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뒤늦게 다른 곳을 여행하다가 그 청년 얘기를 들었는데, 그 숙소 묵었던 사람들 말로는 굉장히 좋았다고, 친절했다고 하더라만.. 그 때는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도착한 카주라호!
한밤 주이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한적했다.
그래도 관광 도시답게 잘 정비된 느낌을 가진,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한글이 반겨주는 곳이었다.

배가 고파서 찾아간 식당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유명하다는 “총각 식당”
메뉴판에서부터 정성이 느껴지더니 음식맛도 상당히 좋았다.

식당 인테리어로 사용된 신라면 봉지와 참이슬 병;;

그리고 밤 하늘에는 둥근 달이..

 

2월 4일 카주라호

카주라호는 너무나 유명한 “카마수트라”의 고향이기도 하고, 에로틱한 유적군들이 넓게 펼쳐져 있는 성(性)의 도시다.
유적군은 크게 남부와 동부, 서부로 나뉘어 있지만 잠깐만 둘러보고 갈 예정이어서 아침에 바로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정보 교환을 좀 해보자는 생각에 한국 식당을 찾아갔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괜히 식당 앞에서부터 이상한 소년 하나가 졸졸 쫓아와서 귀찮게 할 뿐..
녀석은 자기가 산다는 Old Village 얘기부터, 명함을 보여주며 짚차 소개도 하더니(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결국 한국 동전을 달라, 펜을 달라, (내가 환전하는 걸 보고 나서) 달러를 달라.. 그렇게 버스 예매하는 곳까지 쫓아왔다.
전날 저녁 먹을 때 메뉴판에 적힌 글을 통해서, Old Village에 갔다가 반강제로 기부하고 왔다는 한국인의 피해사례를 접한 터라 녀석을 계속 경계했지만- _-++ 버스 예매 이후로 갑자기 사라진 점이나 요금이 좀 비싸게 느껴졌던 걸로 미루어보아 알선료를 챙기지 않았나 싶다.
이젠 애들까지 불신하게 되는구나;;
마침 일요일이라서 바라나시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었고, 기차표 예약 사무소도 영업을 안 해서 결국 사트나행 버스표를 끊었다.
자, 이젠 남은 시간 동안 관광이다!

들어갈 때도 매표소에서 실랑이를 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입장료가 상당히 비싼데, 인도 루피와 미국 달러를 선택해서 낼 수 있다.
그런데 미국 달러로 계산하는 게 훨씬 싸다. (USD 5 / INR 250)
그래서 지금껏 입장료를 계속 달러로 지불했고, 이번에도 그럴 생각에 돈을 내밀었더니 달러는 안받는단다;
바로 건너편에 있던 경찰 아저씨를 대동해서 매표소로 갔더니 바로 꼬리내리며 들여보내주는 매표소 직원- _-
아.. 니들 정말 이럴래?



전체적으로 정말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유적들은, 내가 즐길 만한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 비슷비슷했다.

사진 좀 찍으려고 하면 사람들이 꼭 가려댄다;
개중에는 재빨리 피해주는 친절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무개념;;








동물과의 성교까지.. 제법 조각들의 수위가 높다;;

자이살메르에서의 낙타 사파리를 떠오르게 하는 조각 발견+_+




디테일이 살아 있는 천장 조각;




















역시 전부 엇비슷한 유적들- _-









안녕~ 카주라호 유적지!
시간에 쫓겨서 대충 둘러보다 보니 관광을 위한 관광을 하게 되어 무척 아쉬웠던 곳 중 하나다.
한국 음식도 맛있고, 도시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편이고, 호수도 있고, 물가도 나름 저렴한 맘에 드는 도시였는데 며칠 머무르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된다.

힘겹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트나.
예정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으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지금까지는 표를 미리 예매해서 기차를 탔었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이라서 창구에 가서 바로 기차표를 끊었는데 표 형태가 예사롭지 않다.
뭄바이에서 탔던 교외전철 티켓처럼 생긴 것이, 좌석 번호는 물론이고, 기차 번호와 출발 시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계속 불안했던 느낌은 한 시간 연착된 기차가 역에 들어서고 나자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끊었던 것은 입석표+_+
생각지도 않게 입석으로 밤 기차를 타게 된 우리들..
(당황하기는 사트나까지 버스를 같이 타고 왔던 서양애들 무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얘들은 지들끼리 뭉쳐서 기차 내의 어디론가 가더라;;)

마지못해 탑승은 했지만, 이미 기차 내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AC(에어컨디셔너 시설이 되어있는 1등급칸)쪽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쪽은 1등급칸이라 인도애들이 바닥을 장악하지 못해서 제법 여유있게 앉아 갈 수 있었다.
차장으로 짐작되는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하니 3~4시간 후 자리가 나면 옮겨주겠다고 해서 추운 밤바람이 스며들고 피곤이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겨우 겨우 참아냈다.
그랬는데 한참 지나서 나타난 직원이 요구하는 금액이 너무 터무니 없었다.
보아하니, 이미 승객이 내려서 자리가 비어버린 곳에 우리를 안내하고 돈은 그대로 자기 주머니에 챙겨넣을 생각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몇 시간을 타고 갈 기차 운임으로 350루피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 돈 줄 바에야 사트나에서 하루 자고 갔겠다;
어쩔 수 없이 SL(Sleeper Class, 2등급칸)쪽으로 이동, 수많은 인파들과 부대끼며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마땅히 앉아있을만 한 자리는 없지, 냄새나고 더럽지,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번잡스럽지.. 정말 괴로운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경찰 아저씨가 자기 자리를 좀 내줘서(앉아 가라고) 엉덩이는 간신히 붙일 수 있었다.
내가 이런 꼴이 될 지 누가 알았으랴..
새벽 6시경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 그래서 무작정 반가움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입석 기차 여행이 가져다 준 괴로움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ㅂ=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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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인도/네팔 여행기 6편”

  1. Ratatosk Says:

    집밖에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고생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구나. 그만큼 삶의 경험치를 얻었다는 것도 느껴져서 좋구낭!

  2. admin Says:

    일부러 고생하러 갔던거라 이맘때쯤은 적당히 즐겼지=ㅁ=
    괜히 시비 걸고 말쌈하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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