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국내 1위의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 로그인했다.
나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실명 확인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뉴스기사 등에 달리는 악성 리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네이버 측에서 법 조항을 내세워 조치를 취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동안 아무 근거없는 인신 공격성 악성 리플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물질적인 재산 피해를 입고, 정신적으로 상처받았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은 귀결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인터넷 실명제가 가져올 수 있는 시놉티콘의 붕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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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티콘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파놉티콘을 이야기해야 한다.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위키 백과 사전 참고)
나 역시 철학적 지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므로 개념적인 부분만 이해하고 있기에 내가 가진 상식선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파놉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의미의 ‘opticon’을 결합한 말로, 본래는 교화를 목적으로 설계된 원형 감옥을 뜻했다 한다.
감옥 중심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그 둘레를 따라 죄수들을 수용할 감방을 설치한다.
죄수들의 감방에는 중앙의 감시탑을 향하는 창이 하나씩 뚫려 있다.
또한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반대로 죄수들의 감방은 항상 조명으로 밝게 유지해서 감시탑의 감시자(간수)가 누구를 감시하고 있는지 죄수들은 파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이, 자신들은 ‘늘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생활하게 되고 결국은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감시는 단순히 죄수들의 정보를 캐낸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죄수들을 통제하고 제어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확장되게 된다.
이 파놉티콘 개념은 벤담이 살던 시대에서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하다가, 20C 말에 푸코가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인용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푸코는 파놉티콘의 감시 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panopticism)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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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각 개인의 정보를 정부에서 DB화해서 관리함에 따라 권력 기관이 정보를 이용해서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론적으로 완벽한 감시 사회를 보여주는 파놉티콘의 모델은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로 구체화되고 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우리 모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인지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파놉티콘화가 진행될 수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각종 권리들은 파괴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 보장은 감시나 통제를 없애는 소극적인 방법을 넘어서, 소수 또는 다수의 감시자를 역으로 감시하는 시놉티콘(Synopticon)이라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통제와 감시가 아니라,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호 감시 체계인 것이다.
인터넷은 이런 시놉티콘의 기능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가져 온 미디어 수단이다.
정부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해 개인이 표출하는 작은 목소리들은 인터넷이라는 매개를 통해 큰 목소리로 변화하여 권력화하고 있으며,
언론에게서 정보를 주입당하기만 하던 과거와는 달리, 수많은 누리꾼들에 의해 언론이 감시당하고 통제받는 현실은 이미 진행 중이다.
소수가 혁명적인 생각을 갖는 것보다 다수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이 더 혁명적이다.
- A. Gramsci
사회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감시자들에 의해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다수인 (과거의) 피감시자들 스스로가 서로 견제하며 의식을 조금씩 개선해나갈 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로 인해 마녀사냥식으로 타락했던 경우도 적지는 않았지만,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이나 정치인,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여론과는 반대로 치달아가는 정부 정책 등에 대해 그동안 누리꾼들이 보여준 힘은 이런 발전의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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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특정 정당의 대선 (예비) 후보들에 대해 어떠한 지지나 비방의 글도 인터넷에 게재해서는 안된다는 조치가 내려진 바 있다.
수많은 누리꾼들이 방문하는 국내 1위의 포털인 네이버측에서는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저질 문화의 훌륭한 배설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디씨인사이드 역시 연내에 실명제를 도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놉티콘이 점점 무너지는 사회.
대화가 줄어들면 서로간의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 상호간 불신하는 사회로의 퇴행.
이것이 “별 것 아닌” 실명 확인에 내가 발끈하게 되는 이유라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