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이모티콘 인도/네팔 여행기 5편
Jun 22

(스크롤 압뷁 주의)

인도의 기차는 안내 방송이 전혀 없다.
영어 방송은 커녕 자국어 안내 방송도 안 한다.
기차역에 도착해도 역이름은 힌디로 쓰여있을 뿐, 영어 안내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자칫 기차역을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무슨 연착이 그리 많은지, 제 시간에 출발/도착하는 기차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주변의 현지인들에게 미리미리 물어두지 않으면 내려야 할 때 내릴 수 없다- _-
물론 그것도 사람들마다 대답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최소한 서너사람에게는 신세를 져야 한다.
하지만 밤기차일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도착 시간이 이른 아침이나 새벽 시간일 경우에는 아무리 예정시간보다 1~2시간 일찍 알람을 맞춰놓아도 불안해서 잠을 편안하게 잘 수가 없다.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로 가기 위해 처음으로 탔던 밤기차에서, 우리는 자칫 기차역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사실 그렇게 지나쳐버려서 계획하지 않은 이름 모를 도시에 도착한다해도 아무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아니 오히려 그 편이 훨씬 재미있는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 당시에는 목적지를 지나친다는 게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 줄 알았었다.
(그 이후로도 기차를 타며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았지만;; 타고 난 행운 덕분인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어쨌든 덜 깬 눈을 열심히 부벼대며 기차를 내렸다.
조드푸르는 전날 들렀던 자이푸르와는 달리, 블루 시티(Blue Ci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브라만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계급과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집을 파랗게 칠해서 지금도 도시 곳곳에 파란 빛을 띄고 있다.
왜 파란색이냐고?
그건 인도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높은 지위와 많은 신자, 강력한 힘으로 이름 높은 신, 시바(Shiva)신의 몸(피부) 색깔이 푸른색인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1월 20일 조드푸르

조드푸르는 규모도 작고, 이렇다 할 볼거리가 많은 곳도 아니라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도중에 무박으로 거쳐가기로 했던 도시다.
그래서 짐은 기차역에 맡겨놓고(기차표가 있으면 정말 저렴하게 짐을 맡길 수 있다) 메헤랑가르 성만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가 오토릭샤를 타고 도착 한 메헤랑가르 성의 입구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정문(?)이 아니었다.
성의 중심부에 도달한 뒤에야 우리는 표를 구입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곳까지 이르는 도중에 매표소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릭샤왈라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지만 고맙게도 무료로 관람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메헤랑가르 성- _-
덕분에 전날 잔타르 만타르에서의 안좋은 추억으로 울적하던 기분은 산뜻하게 정화될 수 있었다;;






뒷문(?)쪽이라 그런지 현재도 성내부에서 주거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상.
뿌자로 대변되는 그들의 종교는 거의 생활 그 자체인 것 같다.
성을 오르면서 만난 아이들에게 창락이가 한국에서 가져온 볼펜을 나눠줬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
그걸 보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선물할 만한 걸 미리미리 챙겨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꽤나 후회했었다.


어때, 이만하면 Blue City라고 할 수 있겠지?






뒷문으로 들어가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어서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고성을 마음껏 거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중심부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관광객이 지나갈 때만 열심히 악기 연주하며 대놓고 팁(tip)을 요구하던 아저씨들- _-

메헤랑가르 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띠(Sati)의 흔적.
인도에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들도 함께 생매장했었던 사띠 의식이란 게 있었다 한다.
해외토픽을 통해 본인 의사와는 반대로 강제로 죽이거나 생매장시킨다는 끔찍한 사례가 지금도 가끔 전해지는 게 사실이기는 하다.
아무튼, 예전에 이곳 성주가 죽었을 때 그의 부인 15명이 사띠로 희생된 흔적이 성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적잖은 충격을 전해준다.






가이드북에는 성 내부에 위치한 박물관에 볼거리가 많으니 꼭 가보라고 되어 있었지만, 박물관은 표 검사를 열심히 하고 있길래 발길을 돌렸다.
이미 성을 둘러볼대로 둘러본 후였던 데다 매표소까지 다시 갔다온다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서 과감히 pass~
그냥 길을 따라 성 주변만 대충 돌아보기로 했다.

한 방 날려줘~



파랗게 칠한 집들이 제법 많다.

저 멀리 보이는 저 곳은 자스완트 탄다라는 이름의 유적지인데, 타즈 마할처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란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저씨.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람쥐만 보면 셔터에 손이 가는 이상한 취향- _-

이 도시에는 브라만들만 모여 살았나.. 왜 이렇게 파란 집이 많은 걸까?


가운데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기의 삼지창 그림.
이곳은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다.
역시 시바의 피부색과 Blue City는 깊은 관계가 있는 걸까?






작은 사진이라 신분 노출- _- 우려가 거의 없지만 모자이크를 한 이유는..
밤기차를 타느라 제대로 씻지 못했기에 지저분한 상태였기 때문.




안녕, 메헤랑가르 성~

메헤랑가르 성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조드푸르의 큰 시장인, 사다르 바자르(Main Market이라는 의미)에 구경을 나갔다.
유명하다는 오물렛 샵에서 점심을 먹고(정말 한국 사람들이 가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GoGo~

처음 타 본 버스는 기차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2층으로 나눠서 윗쪽은 누워서 가고, 아래쪽은 앉아서 가도록 만들어진, 인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Sleeper Class.
자리는 어찌나 불편한지, 그리고 통로까지 빈틈없이 가득 메운 현지인들은 왜 그렇게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인지.
게다가 해가 기울어진 시간이라 날씨는 쌀쌀한데, 어디선가 바람은 계속 새어 들어오고..

게다가 목적지(자이살메르)에 도착하기 좀 전에는, 웬 이상한 녀석 둘이 버스에 타더니 외국인들을 상대로 세금(tax)을 내라고- _- 강요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았고 여행 중 만난 사람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세금이고, 왠지 믿음이 안가는 세금 징수원들이라 안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같이 버스에 타고 있었던 한국인 세명이 너무나 쉽게 지갑을 열어버려서 덩달아 우리도 전의 상실..
(뒤늦게 알게 되지만, 세금이 얼마 전에 생겨서 내는 게 맞긴 하더라)
게다가 버스가 도착한 뒤에는, “타이타닉”이라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숙소를 사칭하는 녀석 때문에 또 기운이 빠지고 말았다.
어렵게 숙소를 잡기는 했지만 이미 상한 기분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고, 나는 인간에 대한 불신만 점점 커지는 이 여행에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절을 친절로 해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지인들의 태도에서 나는 여행의 본래 목적을 조금씩 상실해가고 있었다.

 

1월 21일 자이살메르(낙타 사파리 1일차)

어찌 됐건 자이살메르에는 무사히 도착했고, 계획대로 낙타 사파리(1박 2일 일정)에 참가하기로 했다.
아침 9시에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다른 한국인 3명(어제 버스에 같이 탔었던, 세금 쉽게 내주던 그 사람들;;)과 함께 Jeep을 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1년치 먼지를 한번에 마시며 도착한 그곳은, 예상했던 사막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던 나름 귀여운(?) 낙타 7마리, 그리고 낙타 주인인 아저씨와 할아버지 다섯 명과 함께 즐거운 체험을 기대하며 사파리를 시작했다.
그 때는 내가 미쳤었지- _-








처음 타고 내릴 때가 좀 재밌기는 하지만 낙타를 타고 가는 도중에는 생각보다 자세가 안정적이라서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약간 거무스름한 털 색깔을 가진 이 녀석이 날 태웠던 낙타.


약 30분 가량 낙타를 타고 이동했을까.
사막 중간에 자리한 급수시설에 도착, 잠깐 휴식을 취하며 낙타에게 물을 먹이는 시간.
물론 우리에게는 그냥 사진 찍으며 노는 시간.




사막 어딘가에서부터 나타난 아이들- _-
뉘집 아이들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물을 마시게 한 후, 낙타를 다시 타고 좀 더 가더니 이번에는 밥을 먹자며 멈추는 아저씨들- _-
점심은 짜이 한 잔과 짜파티 with 커리, 그리고 기름에 튀긴 Chips..
물론 모래가 사각사각 잘도 씹힌다;

아저씨들은 요리 중;;
뺏어서 내가 한다고 할 걸 그랬나?


낙타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한시간이 될까 말까..
그런데 물 마시느라 쉬는데 30분, 밥 먹느라 멈춰 선 시간이 대략 3시간;
준비하고,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및 뒷정리까지..
만만디 중국인 저리가라다.
원래 인도 식당에 가서 음식 주문하면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날은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풀 코스다보니 기다림에 지쳐 이렇게 쓰러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낙타도 점심 시간~
근데 이 녀석들 정말 오랫동안, 많이 먹는다;




기다림..




그리고 기다림..



어느새 늘어난 아이들과 늦장 부리는 아저씨들.
아이들의 보잘 것 없는 입성과 궁기 흐르는 표정들은 가슴 한 구석을 푹푹 찔러댔지만 당시에 먹을 것이라고는 껌이나 사탕조차 없었던 나였기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아저씨, 이제 배도 부른데 슬슬 출발할까요?

세 시간 가량의 기나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다시 출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낙타를 타고 두어 시간쯤 나아갔을까.
(물론 중간에 급수 한 번;)
오늘은 여기서 머무르자면서 아저씨들이 멈춰섰다.
구릉지같은 곳에 잔뜩 쌓인 쓰레기들과 낙타의 응아- _-들이 여기서 머물렀을 여행자들의 자취를 느끼게 했다.









어두워지기를 무작정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을 먹었다.
바베큐를 먹고 싶으면 한 사람당 1000Rs.씩 돈을 내라~ 는 아저씨들..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바베큐에 굴복할 우리가 아니닷!
결국 저녁밥은 커리+짜파티+밥에 짜이 한 잔.
커리에 밥을 비벼 손으로 먹는 맛이란..
그리고 거기에 낮보다 훨씬 잘 씹히는 모래들까지.
피로에 지친 몸과 허기진 배,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충분히 내려앉은 어스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저녁식사;
군대 훈련소 시절보다 더 본능에 충실했던 그때.

자기 전에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짜이 한 잔, 소주 한 모금에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했었는지, 젊은 축에 속하는 아저씨 한 명은 “아리랑”도 부르고, “오~ 필승 코리아”까지 외치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잠 자리에 들 시간.
밤하늘에는 별이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았다.
그러나 이미 차갑게 식어버려 냉기를 쏘아대는 대지와 차갑게 얼어붙은 대기, 더러운 담요 2장, 주변을 끊임없이 서성이는 들개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낭만을 느끼려던 나를 현실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오래 기억될 낙타 사파리, 그리고 사막에서의 하룻밤.

 

1월 22일 자이살메르(낙타 사파리 2일차)

이런 추한 모습으로 하룻밤을 보냈단 말이지- _-

아침은 토스트에 삶은 계란, 그리고 따뜻한 짜이 한 잔으로 대충 때웠다.
부실했지만, 가장 먹을 만 했던 식사였기도 하다.
간단히 먹어서 그런지 어제처럼 시간을 질질 끌지는 않아서 좋았다.


돌아가는 길에 조우한 염소떼(?)


보자기를 뒤집어 쓴 나영이- _-;;


한 시간여 낙타를 타고나서 드디어 1박 2일 일정의 낙타 사파리가 끝이 났다.
우리를 태우고 갈 Jeep가 오기로 한 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또 몇 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Jeep은 도착했다.

또 한참을 먼지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왔다.
많이 더러워진 옷 몇 벌은 세탁을 맡기고, 샤워와 함께 빨래를 하며 사막에서의 이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푹 쉬었다.
며칠간 계속 일정에 쫓겨 여유를 찾지 못하고 여행을 위한 여행만을 해왔던 나, 그리고 우리였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은 더욱 달콤했다.




오후가 되어 다시 성 주변을 거닐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무한 리필되는 탈리로 점심을 먹고, 쇼핑도 하고, 오랜만에 전화도 하면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한밤 중의 자이살메르 성, 멋진 모습!
이날이 더욱 기억되는 것은, 처음으로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고 쇼핑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여행을 하고 처음으로, (속았다는 느낌없이) 유쾌한 기분으로 흥정없이 물건을 샀다.
게다가 명함까지 건네면서 문제있거나 다른 물건이 필요하면 다시 들르라고 하던 그 상인의 모습에서 그간 쌓아왔던 인간에 대한 불신을 조금이나마 무너뜨릴 수 있었다.

 

1월 23일 자이살메르

자이살메르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
오전에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후, 일행들은 다들 인터넷 하러 가고, 나는 숙소에 있는 의자에 앉아 광합성하며 책을 읽었다.
숙소 안이라서 괜히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어서 기분 좋았던 한 때.
이미 낙타 사파리의 후유증으로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인 데다가 사막 지역이라 이렇다 할 볼거리도 없는 도시라 그냥 성 주변을 따라 잠깐 돌아다녔다.


어느 귀족의 저택이었다는 나트말 키 하벨리.
입장료가 없는 곳이어서 들어가 보았지만, 역시나 공짜인 이유가 있더라.
볼거리는 전혀 없고, 물건 파는 좌판만 들어서 있었던 곳;;

자이살메르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식당에서 찍은 사진.
아마도 숙소 근처의 티벳 음식점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티벳 음식(우리나라의 칼국수와 비슷한 “툭파”)을 먹었던 곳인데, 음식도 맛있었지만 저 글귀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If your HEART is full of love, you always have something to give.”
내 가슴이 너무 메말라있었기에, 이곳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취해왔던 것은 아닐까.
마치 그들이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라도 할 것처럼, 나 혼자 걱정하고 그걸 지키느라 잔뜩 긴장하고 있다보니 더 지치고 힘든 여행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인색하고 닫힌 마음으로만 대하지 않았던가.
혼자서 많이 고민하게 했던 그림&글이었다.

오후 3시 반, 버스를 타고 호반의 도시, 우다이푸르를 향했다.
도착 예정 시간인 다음날 새벽 6시까지 14시간 가량을 버스에서 꼼짝 못하고 묶여있어야 했던- _- 첫번째 장거리 버스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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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인도/네팔 여행기 4편”

  1. Ratatosk Says:

    고생 많이 했구나. 그런데 사진의 모자이크가 너무 범죄자틱해서 웃긴다(;;) 꽤죄죄한 얼굴이 보고싶구나. ㅎㅎ
    마음의 여유는 백그라운드가 든든하고 안정적일 때-그러니까 화목한 가정이라던가- 혹은 완전히 혼자라 더 잃을 것도 없을 때 본격적이라던가…..후우..
    스킨 이쁘구나. 이제 여행의 2/10정도인가?

  2. admin Says:

    마지막으로 올린 5편까지 하면 2/10를 좀 넘었지ㅋ
    원래는 모자이크 대신에 얼굴 부위에 그림을 덧씌우려고 했었는데, 마땅한 그림이 없더라구.
    그림을 찾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간단히 모자이크 해 버렸지.
    그나저나 이번 주 안으로 네팔 가기전 사진을 마무리하려고 했었는데, 역시 무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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