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21

난, 구직자다.

아직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휴학생이지만, 작년 하반기 공채도 해보고, 올해 상반기 공채(내년 2월 졸업자가 지원 가능한 몇 군데)와 인턴 공채를 해봤다.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다른 구직자들에 비해서 “절박함”이라는 요소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원서를 내고, 필기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합격과 불합격으로 이분되는 결과에 대해서도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 합격하면 열심히 일할 회사가 아니더라도 모집 공고가 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열심히 “경험치”를 높이기 위해 지원서를 써냈다.

그래, 경험치.. 어쩌면 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건 그런 마구잡이식 지원의 결과다.

나름대로 공들였던 곳은 불합격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고 허술하게 써낸 곳은 합격한다.

똑같은 내용으로 같은 업종, 같은 직무에 지원해도 어떤 회사는 합격시키고 어떤 회사는 불합격시킨다.

불합격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난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 있잖아, 스스로 나를 달래보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마이너스 사고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뭐가 부족할까,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어떤 점이 잘난걸까, 뭘 해야할까..

의구심이 먼저 머릿 속을 채운다.

눈이 너무 높았던걸까, 괜한 시간 낭비를 한 것은 아닐까, 내가 내 자신을 너무 믿은 것은 아닌가..

비애감과 자괴감도 슬쩍 고개를 든다.

물론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모호한 기준, 불분명한 평가, 시종일관 베일에 싸여있는 과정들..

이럴 때, 나는 힘의 차이를 느낀다.

내가 구직자인 한, 나는 언제나 약자다.

내가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여유를 부리고, 미소를 지으며 힘있는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나는 언제나 약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물론 늘 이렇게 일방적이기만 한 힘의 차이,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완력이든, 권력이든, 재력이든, 아니면 다른 차원의 힘이든,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힘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약자가 늘 패자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난 믿고 있으니까.

그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루기도 전에 조금씩 전의를 상실해가고 있는 내가 너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오늘도 난, 또 한번 내 약자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했고 그 지위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강자로부터의 편지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채용을 진행했던 인사담당자로부터의 feedback.

내가 왜 약자에서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내 도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의미했던 것인지 그 편지는 짧은 내용 속에 충분히 대답을 담고 있었다.

이미 내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었던, 뻔하다 싶을 정도로 분명하고 단순한 사실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하게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지원서를 수십통 써내다보니 이런 경험도 하게 되는구나.

그 회사, 그리고 편지를 보내준 그 사람, 모두 너무 고맙다.

나는 이제 내가 약자라는 사실조차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3 Responses to “내가 약자이면서도 미소지을 수 있는 이유?”

  1. Ratatosk Says:

    멋지다

  2. admin Says:

    정말 멋진 회사지.
    붙여만 주면 정말 열심히, 즐겁게 다닐만 한 회사같다.
    붙여만 주면, 붙여만 주면.. -_ -
    그런데, 필기시험 응시자에게 교통비 챙겨주는 회사도 참 멋져+_+
    (어이쿠, 봉투 속에 세종대왕 어르신이 두 분이나 계시네;;)

  3. jin. Says:

    역시.. 라는 단어가 잘 어울려.
    멋지다~ 잘생겼다~ 이쁘장하다~ 탐난다~
    우리 선배!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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