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 데라야마 슈지 쓰고 김성기 옮기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천재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가 쓴 수필집이다.
데라야마 슈지..
가인박명이라고 했던가.
비록 47세에 요절했지만 시, 소설, 평론, 에세이, 연극,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일본 문화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번역된 그의 수필집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특이한 제목, 현란한 편집만큼이나 색다른 재미가 있는 책이다.
도박, 가출, 자살, 성(性) 등 다른 이들의 수필집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재들을 다루고 있고,
또한 그런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서도 전혀 거리낌이나 망설임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글을 대하게 된다.
꽉 짜여진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가?
불량소년이 되고 싶은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가?
데라야마 슈지가 하는 말을 들어보라.
아마도 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ex libris;
책의 원제는 앙드레 지드의 작품인 《지상의 양식》의 서문에서 유래한다. 지드는 스물여섯 살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던져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라. 이 책이 너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주길 바란다. 너의 곁에서, 너의 서재에서 그리고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
- p.11(옮긴이의 글)
월급을 양복이나 아파트, 식사 등에 일정하게 배분한다면 우리도 금방 ‘거북이’ 무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한 점(一點)을 골라 그곳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양복파나 미식가, 스포츠광과 같은 젊은이들을 한심한 놈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렇게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이다.
- p.23
나는 달만 쳐다봐도 눈물을 글썽이는 가련형의 여성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여성은 대체로 재수가 없다. 아무리 큰 재난이 닥쳐도 언제나 미소 짓는 여성들이 있다. 그런 여성에게서 진정한 슬픔을 발견할 때 진정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 pp.94~95
“연필로 사람을 벨 수는 없지만 말로는 벨 수 있지. 예전의 도박꾼들은 옆구리에 찬 칼로 사람을 찔렀지만, 오늘날의 영웅은 말로 사람을 죽이거든. 모든 이들이 말을 통해 타인과 접촉하는 세상이니까.”
- pp.178~179
나는 뭐든지 잘 버린다. 소년시절에는 부모를 버렸고, 홀로 기차에 올라탐으로써 고향을 버렸고, 동거하던 여자를 버렸다.
여행이란 ‘풍경을 버리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p.181
“멀쩡한 눈은 현실밖에 볼 수 없지만 감겨 있는 눈은 환상까지 볼 수 있다.”
- p.198
예전에는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에 대부분 ‘귀신’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그 대답이 ‘원자폭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원자폭탄이나 귀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괴담은 이른바 이런 ‘무사평온의 공포’를 다룬다.- p.233
하지만 도구는 문명화되면서 점차 기계로 바뀌었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동안에는 도구라고 불렸지만, 반대로 인간이 이용당하면서 기계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 p.241
괜히 무게잡고 폼 재려는 딱딱한 수필집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어찌 보면 경박하고 저급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시대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을 힐끔 엿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