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은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글이다.
김형태씨 홈페이지에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어서 그냥 자판을 두드리기는 했는데, 저자 허락없이 맘대로 글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p.250 이 시대의 청춘에게
4·19, 6·29, 386, 그리고 지금 청춘의 알리바이
오늘 2004년 4월 19일, 4·19혁명이 일어난 지 44년째 되는 해, 3김 시대의 마지막 노병 김종필 씨가 드디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또 신문 한편에는 며칠 전의 총선에 대해서, 4·19세대가 퇴조하고 386세대가 떠오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대교체라는 것이 이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리는 것이냐. 4·19혁명이 일어난 지 44년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4·19세대가 퇴조하고, 당대의 청년 정치인이었던 3김 씨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차례로 대통령직을 해먹고, 차례가 너무 늦어버린 김종필 씨는 영원한 2인자로 은퇴를 했다. 2004년 4월 19일, 오늘에서야 말이다.지난 40년을 한 세대가 독점적으로 주름잡을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이 젊었을 때 4·19혁명의 주역이었다는 알리바이 때문이다. 4·19세대 이전에 주인공들은, 젊은 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고 주장하는 세대들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이제 40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각 분야에서 주역을 차지하는 386세대의 알리바이는 그들이 학생이었을 때 군부 타도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쳤다는 알리바이 때문이다.
이제, 4·19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386세대는 적어도 30년 이상은 이 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주역을 차지하고 독주할 것이다. 아마도 내 나이 80이 가까울 때나 되어서야 내 친구뻘 되는 이들이 각 분야에서 은퇴하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김종필 씨처럼 말이다.이처럼, ‘청년 시절의 알리바이’는 강력한 것이다.
지금 청년들의 알리바이는 무엇인가. 독립은동, 4·19혁명, 6월항쟁에 필적할 만한 그 무엇이 있을까? 정치적 알리바이가 없다면, 문화, 예술, 철학적 알리바이는 있는가?
이 글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세대’가 아니다. ‘젊은 날을 무엇에 투신했는가’이다.
젊은 그대, 뜨거운 피의 열정을 무엇에 쏟을 것인가. 지금 이대로 ‘이태백 세대’ 혹은 ‘소비자 세대’로 귀결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미래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외로이 부유하는 청춘아, 미래를 부탁한다.
자, 그럼 이쯤에서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 청춘의 알리바이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