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7

책을 받고서 기분이 좋았다.

인상적인 표지와 제목이 주는 강렬함도 한 몫 했지만 그보다는 두툼한 두께와는 달리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와 본문의 재생지 질감이 주는 편안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출판계에서 유행을 타고 있는 양장본 표지와 고급스런 종이 질감에만 익숙해진 나로서는 마분지로 만들어진 표지와 본문의 약간은 거친 듯한 느낌이 오히려 더 좋게만 느껴졌다.

스스로 B급 좌파라 칭하는 진보주의자, 김규항.

이 책은 그가 2001~2005년에 매체를 통해 기고했던 글들과 그 기간동안의 일기 중 일부를 묶어서 펴낸 칼럼집이다.

김규항씨의 글은 그의 블로그 사이트를 통해 가끔 접해보기는 했지만,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진보, 사회운동, 페미니즘, 종교..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이다.

종교에 무지하고 그래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기에, 그 중에서도 예수의 삶에 반추하고 민중의 종교로서의 교회를 말하는 그의 종교관은 더욱 더 인상적이었다.

그의 의도가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읽는내내 불편한 기분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입가에 쓴웃음이 슬며시 지어지기도 했다.

그의 글이 불편했던 것은 그것이 쉽게 씌여진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쉽게 씌여지고 편안하게 읽히는 이상적인 세상의 묘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눈돌리는 처연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편함.. 그러나 그 불편함이 더 반가웠던 B급 좌파 김규항씨와의 짧은 만남.

마치 내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애써 진지한 표정으로 쓴소리를 입에 담는 선배같은 느낌.

직접 대면한 적도 없으면서 그가 왠지 이웃집의 아저씨나 형들처럼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까.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어느 틈엔가 불온해져 버린 나를 발견한다. ★★★★★ ★★★☆☆

 

ex libris;

안락한 소수에겐 고단하게 살아 볼 자유마저 보장되지만 고단한 다수에겐 고단하게 살 자유만 보장된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어디에나 진열되어 있지만, 돈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다.

– p.117, 요구르트

 

지나간 역사, 다른 나라의 현실에 올바른 선택을 하긴 쉽다. 게바라와 마르크스가 애호되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오늘 현실, 오늘 진행하는 역사에 올바른 선택을 하긴 쉽지 않다. 그 선택이 제 밥그릇과 안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3년 전 전태일에 서슴없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우리는 오늘의 전태일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

– p.147, 선택 2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 말이 계속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 p.167, 강연회

 

나는 사는 꼴에 걸맞지 않게 소리 높이거나, 그 소리에 걸맞지 않게 한가롭게 살고 있다. 훨씬 더 정열적으로 살거나, 훨씬 더 검소하게 써야 한다.

– p.228, 검소하게(일기)

 

물론, 진실은 옳고 그름의 차원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지 않는 건 아예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진실에 다가가지 않기 위해, ‘진실은 옳고 그름의 차원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곤 한다. 우리가 진실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것이다.

– p.231, 진실(일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남아 있어야 인간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 p.231, 돈(일기)

 

한국인들이 입기만 하면 상스러워지는 세 가지 갑옷.
자동차, 예비군복, 인터넷

– p.247, 갑옷(일기)

 

좋은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 p.251, 글과 음악(일기)

 

늘 하는 말이지만 진리는 쉬우며 쉽지 않다면 진리가 아니다.

– p.265, 지적 갈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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