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막연하게나마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이라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행 입시 제도로 말미암은 것이든, 학교 행정에 의해 제시된 것이든, 아니면 학생 스스로가 상상한 것이든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재 상황(고등학생 신분)보다 훨씬 이상적인 대학생활을 기대하며 그 힘든 수험생활을 잘 참고 견뎌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권위적인 학칙에 억눌려 수험생활인지 수감생활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언젠가 캠퍼스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지성인이자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리라는 기대감.
나 역시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그 시절에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처지를 자위하곤 했었다.
(사실 그 시절에 남들처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싸우듯이 생활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수험생이라는 올가미에 목졸림을 당해 그런 질식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 몇주간 생활을 해보면서 나의 환상들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나는 지성인도, 자유인도 아니었으며 대학이라는 공간은 절대로 환상이라는 단어의 피수식어가 될 수 없는 장소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재학시의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진리 탐구를 위한 공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오늘도 취업이라는 또다른 입시를 위해 수험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좀전까지도, 키보드 매크로 프로그램이라는 병기까지 써가며 힘껏 싸워봤지만, 수강신청이라는 또다른 전쟁에서 패배하고 왔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매년 등록금은 무서운 기세로 치솟는데 왜 강의라는 서비스는 그 댓가만큼의 값어치를 못하는 것인지.
왜 매학기 초마다 겪는 이런 소모전에 시작하기도 전에 벌서 지쳐버리게 하는지.
그러나 이것이 비단 학교 당국만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학문보다는 쉬운 학문, 배우고 싶은 학문보다는 학점 따기 쉬운 학문을 선호하는 학생들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을 것이고,
학생들을 그렇게 상아탑의 가장자리로 내몰리게 만든 우리의 교육 환경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오늘날의 대학 문제에서 면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씁쓸하다.
오늘 밝은 표정으로 캠퍼스를 거니는 새내기들을 봐서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들도 머지 않아 대학생활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겠지..
봄내음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캠퍼스의 낭만 이면에 자리한 감옥을, 조만간 깨닫게 되겠지..
그것이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