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올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뤼순감옥에서 세상을 달리한지 7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우리의 주권이 회복된 지도 어느덧 60여년이 지났지만 선생은 아직도 국적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고,
선생의 묘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가묘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아직까지 친일세력이 사회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마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승만 – 다까기 마사오 – 전두환 – 노태우로 이어지는 한국의 지도자 계보..
왜 이리 한숨만 나오는지..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만약 당시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 이승만이 아닌 김구 선생이나 신채호 선생이 지도자가 되었다면,
그래서 친일/친미 세력을 일소하고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ex libris;
단재는 「20세기 신동국지영웅」에서, “구국민은 국민이 아니며 구영웅은 영웅이 아니다”고 말하고 신영웅은 국민적 영웅으로서 국민적 종교, 국민적 학술, 국민적 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였다. 신영웅은 국민 전체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을 말하며, 또 국민 전체가 영웅이 되어야 진정한 외경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pp.131~132
단재는 회의장에서 “미국에 들어앉아 외국의 위임통치나 청원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수반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 등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하고 성토하면서 퇴장하였다.
– p.223
현실에서 도피하는 자는 은사이며 굴복하는 자는 노예이며 격투하는 자는 전사이니 우리는 이 삼자 중에서 전사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
– p.300, 신채호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의 상태를 가려서 기록한 것이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는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다.
– p.326, 신채호
나는 조국의 하늘에 밝아오는 새벽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새벽을 보게 될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그것을 기쁘게 맞이하라. 그리고 밤 사이에 쓰러져간 사람들을 결코 잊지 말라.
– p.408, 필리핀 독립운동 지도자 ‘호세 리잘’
“자기를 낳아준 겨레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친 위대한 인간 신채호는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얼어붙은 황량한 뤼순감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누워서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채 홀로 그의 장엄한 일생을 마치고 순국하였다.” 출옥을 1년 8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 p.412
그렇다! 단재는 우리의 유일한 사학가이며, 한문학계의 대두며, 대도활부적 평론가이며,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던 분이며, 학문에는 능하고 사물에는 암하였다고 평을 난면할 수도 있었던 분이다. 화호화피난화골畵虎畵皮難畵骨이라는 격으로 우리가 만일 화가에게 단재의 청수한 용모와 그 부대불소不大不少한 의표儀表를 그리게 할 수는 있지만 한 마디 말로써 꼭 단재는 이러한 분이라고 능명하며 형언하기는 난하는 분이다.
– p.483, 원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