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論客)[명사] 의론이나 변론을 잘하는 사람. 담론에 능한 사람.
– 네이버 국어사전 인용
요즘 들어 자칭 타칭 논객으로 형용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
나는 “논객”이라는 말을 들으면 진중권이라는 이름과 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속시원히, 감정이나 헛된 논리, 아집과 독선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다 토해낼 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외치며 열심히 허튼 소리하는 사람들에게 그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고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진중권.
오래 전에 읽다가 중간에 덮었었던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폭력과 상스러움”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왕따, 이지메 문제에서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한 정치적 국가주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이끌어낸다.
동성애 문제, 사형제도 존폐 문제, 패거리 문화 등에 대해 거리낌없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그의 특유의 “유머 감각” 탓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등하교길 지하철에서 틈틈히 읽었는데, 책보면서 혼자 큭큭거리며 웃느라 왠지 옆사람의 눈치를 슬쩍 살피게 되더라.
역시 그의 글은 재미있다. 시원하고 유쾌하다. ★★★★★ ★★☆☆☆
책이 출간될 당시, 아니 그가 이 책에 묶인 글들을 쓸 당시에 읽지 못한게 아쉬울 뿐..

ex libris;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 르네 지라르〈폭력과 성스러움〉
총파업이 시도 때도 없이 현실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장경제 속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으로는 늘 존재해야 한다. 총파업은 메시아다. 국가라는 리바이어선과 마주선 잠재적 메시아. 단 우리는 이 메시아를 탈(脫)신학화해야 하고, 그 ‘힘’의 행사가 맹목으로 흐르지 않게 늘 감시하고 비판하며 그 정당성을 물어야 한다.
– 진중권
흔히 ‘왕따’라 부르는 이지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게임규칙이 얼마나 적자생존의 원시 시대를 닮았는지 보여주는 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모든 사회의 어린이는 그 사회의 어른을 닮는다는 사실. [중략] 이지메를 한다고 아이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이지메는 우리 사회의 잠재된 파시즘의 징후다.
– 진중권
모든 “희생”이 “진리”를 세우는 건 아니다. 어떤 이가 희생을 했다는 사실에서 그 희생이 대변하는 이념의 정당성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변태적 유미주의, 미적 형식주의의 극단일 뿐이다. 오직 인간으로부터 자립한 압제적 권력에 ‘대항’하는 희생, 허구적 이념과 주관적 드라마를 ‘탈극화’하여 현실로 돌아오는 냉철한 희생, 집단이나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희생. 이런 희생만이 진리를 세울 수 있다. 전태일의 희생이 값진 건 그 때문이다.
– 진중권
“자유와 평등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좋은 질문. 답변 나간다. “그건 야바위다.” 내 참, 자유와 평등 중에 왜 굳이 하나만 골라야 하는가? 우리 체제 자체가 자유주의+평등주의.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의 상보적 체제가 아니던가?
– 진중권
아마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의식이란, 질서의 수립을 위해 공동체가 최초로 저지른 폭력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 잔혹한 살인행위에 가담하면서도 이제는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어떤 비열한 살인의 공범이다.
– 진중권
하지만 이렇게 남의 인권을 침해하는 어법이 우리 사회에서는 공공연히 통용되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여겨진다. 사회 자체가 보수 이데올로기의 마법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문법적 착각에서 비롯된 미신이다. 그리고 철학은 오성에 걸린 이 마법과의 투쟁이다.
– 진중권
의미는 사용에 있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
자기를 배려하는 행위는 끊임없이 글쓰는 행위와 결합되었다.
– 미셸 푸코〈자기의 테크놀로지〉
한마디로 레드 콤플렉스는 빨갱이에 대한 공포감이 아니다. 외려 빨갱이 잡는 극성스런 반공 투사들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말하자면 언제라도 빨갱이로 몰려 죽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강박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반공주의적 언행을 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 진중권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반공’이라는 네거티브한 이념조차도 한갓 허위와 위선에 불과하며, 실은 수구 기득권층의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처세술이다.
– 진중권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 칼 마르크스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친구가 있다. 이 미디어 스타가 한국 사회에 대해 한마디 옳은 말을 한 게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저신뢰 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놈들이 죄다 믿지 못할 놈이라는 뜻이 아니다. 한국에는 공적인 영역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령 정치, 경제, 언론 등 한국의 공적인 영역에는 규칙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규칙’을 준수하다가는 자기만 병신된다.
– 진중권
우리 민족주의는 이제 혈통적인 것에서 시민적인 것으로 개념이 변해야 한다.
– 임지현
한 낱말, 한 문장, 하나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사용”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친 것이 정상적인 곳에서 정상적이려면 미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이 범상함의 시대에 위대해지려는 자는 우스꽈으서운 꼴이 되고 말 게다. 이것이 파시스트들이 연출하는 ‘숭고한 희극’이다. 이 평범함의 시대에 숭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희극적 숭고’, 즉 스스로 바보-광대가 되는 것뿐이리라. 시대의 아이러니…….
– 진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