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6

이문열의 79년작, 사람의 아들.

그의 초기작답게 포스가 물씬 뿜어져 나온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한껏 치켜세우는 작품이다.

종교적인 내용, 특히 기독 신앙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런 분야에 무지한 나이기에) 읽기를 좀 망설였으나 335개의 주석의 힘을 빌려 열심히 읽었다.

기본적으로 구성은 액자식으로 짜여져 있다.

현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 “남 경사”가 피해자(민요섭)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소설 초안과 노트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 해서 현실의 사건과 소설 속 이야기를 꿰어 맞추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 신앙에 심취한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드는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

나처럼 종교가 없으면서, 비교종교학적인 측면에서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주 즐겁게 읽을만한 책이다.

뒷부분, 특히 민요섭의 돌연한 변화가 내게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쉬웠으나(이건 내 이해력 부족 + 작가의 설명 부족 탓일게다),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잘 짜여진 대단한 소설이다. ★★★★★ ★★★☆☆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적 일면들로 다소 실망하기는 했지만 이문열의 작가적 역량은 역시 대단한 것 같다.

 

ex libris;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낡은 것을 부순다는 뜻이지.”

– p.150

“선친께서는 말씀하셨지. 한 민족이 멸망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신이 그들을 버려서가 아니고, 그들이 자기들의 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전쟁에서의 패배나 강력한 이민족의 대두는 그 다음의 문제이며, 실제로도 자기의 신을 끝까지 지킨 민족은 언제나 살아남았다고.”

– p.161

사람은 자신이 신뢰를 둔 곳에서 그 대가를 거두어야 한다.

– p.164

“‘너희는 나를 위해 경배하지 말라. 나를 위해 제단을 쌓지 말며, 나를 위해 의식과 예물을 바치느라 너희 귀중한 재물과 노력을 허비하지 말라. 먼저 스스로를 구하라.’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기뻐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도 너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나치게 많이 가짐을 구하지 말라. 많이 가짐이 악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이 가난해지는 게 악이기 때문이다.’ ─ 하도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게 된 구절들인데, 비슷하지만 교회 계통은 아니었어요.”

– p.205

그러다가 어떤 게송(偈頌)을 뒤집은 것으로 보이는 노래로 불교에 관한 아하스 페르츠의 언급은 끝이 난다.

사람의 육신은 소용돌이가 아니고
그 감각 또한 물거품이 아니다.
그 표상은 한 가닥 불꽃이 아니며
그 의지 또한 파초 같지는 아니하다.
그 의식이 어찌 한갓 환상일 뿐이랴.

– p.233

“그럼, 사물의 겉모습이란 결국 뭐란 말이오?”
한참 지난 뒤에야 겨우 어렴풋하게나마 그 장님의 말을 알아들은 사내 하나가 그렇게 물었다. 장님은 더욱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그 이름에 걸쳐둔 넝마 같은 것이오. 예를 들어봅시다. 해의 빛깔만 하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아무런 의심 없이 희다 혹은 붉다 따위로 단정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의 정확하지 못한 두 눈이 멋대로 정한 느낌일 뿐이오. [중략] 만약 위대한 이성(理性)이 있어,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우며 때로는 기막적이기도 한 오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모든 존재는 말 특히 이름만이 확실할 뿐인 순수한 추상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이오.”

– pp.241~242

“하지만 당신도 기억해야 할 것이오. 영원하다는 것은 결국 무의미와 별로 다른 바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은 순간이고 영원한 행복이란 영원한 불행처럼 존재하지 않소. 이를테면, 매일 흰 빵에 뻐꾸기 혀 스프를 먹는 자에게는 미식(美食)의 즐거움은 없소. 길건 짧건 그 식탁이 그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은 굳은 빵 껍질과 냉수만으로 끼니를 때우다 처음으로 거기 앉게 된 몇 날뿐이오. 그 나머지는 그저 막연한 습관이거나 감동 없는 만족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오.”

– p.266

선이 홀로만을 우장할 때 독선이 되듯 지혜가 홀로만을 주장하면 악이 될 뿐이다.

– p.347

3 Responses to “이문열 著 – 사람의 아들”

  1. Ratatosk Says:

    읽을 때는 굉장히 재밌게 읽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굉장한 반전같은 깨달음이 있었던 것같은데 이렇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날 때는 대체 책을 왜 읽은 건지 궁금해진다.
    또 읽어야 할까 보다.

  2. admin Says:

    반전은 없는데..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배울 게 많더라.
    뒷마무리가 좀 빈약했지만 여러번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아.

  3. jumpzero Says:

    기독교인이지만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