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1955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다룬 중견작가의 장편소설이다. 1976년에 첫 간행된 이 소설은 나병환자들의 거주지 소록도를 배경으로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한 의사 조백헌과 나환자들과의 미묘한 관계, 정신적 방황과 애환을 실감있게 묘사했다. 남다른 신념과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소록도를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으로 만들려 했던 조백헌과 나환자인 소록도 주민들간의 갈등과 조심스럽게 모색하는 화해 의지를 담고 있다. 소설은 나환자와 일반인, 우리와 당신들이 구별되는 천국이 아닌, 서로 스미고 새로이 짜이는 ‘우리들의 천국’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채워진다.
어느 날 나환자촌 소록도에 새로이 현역 대령 조백헌이 병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소록도를 새로운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득량만 매몰공사를 계획한다. 하지만 21개월이나 걸린 이 공사기간 동안 나환자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이전의 병원장들이 소록도에 천국을 만든다는 대의를 내세워 결국 나환자들을 착취하고 원장 자신만을 영웅화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섬사람들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오랫동안 갈등하고 번뇌하던 끝에 조백헌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섬을 떠난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이제 원장이 아닌 평범한 섬사람으로 소록도에 다시 돌아온다. 이 소설은 타자와의 구체적인 교감 없는 주체의 선한 의지가 타자의 발견을 통해 어떻게 화합의 미래를 형성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점쳐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록도(小鹿島). 작은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남해안의 작은 섬. 나병(한센병)을 앓았던 사람들, 그리고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섬의 수려한 경관이 널리 알려져 일반인들의 발길도 차츰 늘어나고 있지만, 기실 그 곳은 나병환자들을 건강인으로부터 격리 수용시켜온 귀양소나 다름 아니었다.
나병은 더 이상 천형(天刑)이 아니다. 이미 치료 방법이 개발되어 있으며, 물론 완치도 가능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염성도 그리 크지 않다.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으로도 전염이 되지 않으며 유전되지도 않는다. 굳이 환자들을 격리시킬 필요가 없는 병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우리는 불완전한 우리의 병리학적 지식과 이기적인 잣대로 그들을 경원시하고 멸시해오지 않았던가. 우리와는 결코 같이 어우러져 살 수 없는, 우리의 울타리 밖의 존재로만 대해 오지 않았던가. 나병이라는 병마로 이미 몸에 상처를 입은 그들에게 이 사회는 차가운 눈빛과 편견으로 재차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절거리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겨진다.
……
“당신들의 천국”의 무대는 “소록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것은 내겐 너무 익숙한 지명들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고흥, 녹동, 득량만,… 내게는 빛바랜 추억 속에 자리한 지명들… 그렇다. 소록도는 바로 전남 고흥에 위치하고 있다. 녹동에서 뱃길로 5~10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옆동네에서-_- 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난 한번도 소록도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나병환자들이 격리되어 사는 곳”이라는, 출처 모를 지식이 이미 머릿속에 자리한 까닭에 별 다른 호기심이나 관심을 가져볼 생각조차 못했었다. 물론 그렇게 한가로이 다른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탓도 조금은 있지만.
올해 초쯤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체는 원래 의대생이었는데, 나병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여행 도중에 나환자촌에 들러서 그곳의 환자들과 아무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나병은 신체 접촉만으로는 쉽게 전염되지 않는 병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네들 역시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것을. 똑같이 상처받고 똑같이 고통 받고 똑같이 아파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
독도를 생각했다. 일본과 우리 정부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 독도(물론 우리 영토임은 자명하지만;;). 그리고 왠지 일본과 우리 정부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소록도. 두 섬의 운명은 어찌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우리 국민들이 독도 문제에 갖는 관심의 백분지 일만큼이라도 소록도 문제, 그 곳 한센인들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쏟아준다면 그들도 조금은 덜 슬프고 덜 괴롭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아니었을까… 라고 한 번 생각해본다.
……
“소록도”에는 당신들의 천국은 있을지언정 우리들의 천국은 없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은 그럴 것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잔재, 소록도는 오늘도 그저 조용히 침묵할 뿐이다.
// 덧붙이는 글 //
하나. 책 읽고 리뷰를 끄적거려본다는 게 본의 아니게 이상한 방향의 글이 되어 버렸다. 의식이 육체에 지배당한 것인가-_- ; 이 놈의 감기군이 머릿속을 완전히 지배해 버렸나 보다. 역시 몸 상태가 이상할 때는 휴식이 최고! 내일은 정말 푸~욱 쉬리라.
두울. 소록도의 역사를 뒤져보다가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는 사건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단종수술, 일본인 원장인 주정수 살해사건, 오마도 간척사업(이게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사건이다)… 소설 속에 삽입된 시들도 실존하는 것이었다.
세엣. 얼마 전에 소록도의 나환자들(한센인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그 소식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아침 등교길에 신문 기사를 잠시 훑는 정도에 그쳤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재판결과를 듣고 침통함과 분노를 느꼈을 그네들을 생각해보니 왠지 왈칵 분노가 솟는 것 같다. 뻔뻔한 일본 정부에, 그리고 무관심한 우리 정부에.
네엣. 깜빡 잊고 넘어갈뻔한 rating… 약 450페이지 가량의 3부 구성 소설이다. 솔직히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읽고 난 뒤에 뭔가 많이 남는 소설이다. ★★★★★ ★★★☆☆
ex libris;
“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어요. 눈을 뜨고 찾아내려고만 하면 이 땅 위엔 아름답고 귀한 것이 얼마든지 많을 거란 생각 말이오. 하지만 그 아름답고 귀한 것들은 우리가 눈을 뜨고 찾아내지 않으면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보이질 않습니다.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어본 일이 없이 우리 눈앞에서 숨어 사라져버리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 p.358
언젠가도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서 그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내일의 선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섬 위에 꾸미고 계신 원장님의 천국은 어떻습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의 천국이기 전에 우선 원장님의 천국인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오직 원장님 한 분만의 천국일 수도 있습니다.- p.390

November 20th, 2005 at 7:07 pm
전염이 잘 안되기 때문에 천형이라고 불린 것같다. 왜 걸리는지 몰랐으니까…..불치병이었던 탓이 더 크겠지만…..
아직도 치료하기 힘든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치료 특효약도 있구나 몰랐네.
좋은 책 많이 읽는군!
November 21st, 2005 at 6:41 pm
나병도 치료하는 세상이 왔건만 왜 감기는 못고치는 것인가-_-;;
이 놈의 감기.. 이젠 떨어질 때도 됐잖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