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6



걸쭉한 입담과 해학, 풍부한 전통어, 토속어, 생활어로 우리의 전통적 삶과 미학적 가치를 글로 풀어내온 작가의 대표 연작소설이다. 본격적인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에 씌어졌으며,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아울러 도시화의 물결에 훼손당했던 농촌사회의 아픈 세태를 묘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당시 우리 사회의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연작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충남 보령 관촌마을.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기이며, 그로부터 20여 년 뒤 고향을 찾은 작가가 옛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통적 유교사상과 반상의식에 사로잡힌 지방 토호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몰락해가는 과정, 작가의 소설적 분신인 민구네 집안의 수난, 그 집 부엌데기 출신인 옹점이의 행로 등을 다루고 있다. 담담한 어조에 비극적이고도 절박한 스토리를 담은 이 연작집은 토속어와 한문투가 적절히 배합된 작가 특유의 문체미학이 어우러져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성과물로 평가받는다.「공산토월」등 5편을 수록하였다.

이문구 –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를 졸업했으며, ‘현대문학’지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풍부한 토속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산업화·도시화가 몰고 온 부정적 양상들에 대해 치열한 비판을 가하면서 전통적인 삶의 미덕을 새로이 일구어냄으로써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확보한 저자는 작품집「이 풍진 세상을」「해벽」「우리 동네」, 장편소설「장한몽」「산 너머 남촌」을 냈으며, 한국일보문학상과 한국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신동엽 창작기금, 춘강문예창작기금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읽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20여년을 계속 한곳에서만 자라온 나에게는 갓머리마을(冠村)에서의 대화들을 그대로 필사한 문체가 너무 눈에 설게만 느껴졌다.

표준어 규정에 의거, 가독하기 쉬운 언어로 씌여진 책들에만 너무 익숙해진 탓에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로 씌여진 소설처럼,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서 한단계의 번역 과정이 더 필요했다.

모르는 어휘는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수시로 국어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

그것이 두껍지도 않은 책을 이토록 오랫동안 옆에 끼고 있었던 이유라면 이유다.

수능시험에도 지문으로 출제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시험볼 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게 새삼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지금도 이렇게 헤매는데 그 당시의 나라면 어땠을까-_-;;

소설집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모여져 있다.

작가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관촌”이라는 시골 마을의 기억들과 그 곳에서 알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소설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책 전반에 걸쳐 녹아들어 있는 분위기는 아련함과 씁슬함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아련하게 가슴에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과, 상전벽해하여 이미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실의 고향에 대한 씁쓸함..

사실 내게는 “고향”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곳도 없거니와 아직은 젊은 나이탓인지 어린 시절의 추억들도 그렇게 아련하게 가슴에 스며들지는 않는다.
(이렇다할 추억거리가 별로 없는 탓도 있겠지만..)

당연히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작가의 상념들을 그대로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그보다는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해방 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 더욱 눈길이 쏠렸다.

읽는 과정이 너무 힘에 겨웠던 탓인지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더 뿌듯하고 기분 좋았던 책. ★★★★★ ★★★☆☆

ex libris;

옛 글에도 “丹可磨 而不可奪其赤 石可破 而不可奪其堅 …… 단사(丹砂)를 갈더라도 그 붉은 빛을 빼앗을 수 없고, 돌을 깨뜨려도 그 굳음은 빼앗을 수 없다”고 일렀음을 알고 있다.
석공이 그렇듯 돌과 같았던 줄로 생각하기를 나는 서슴지 않는다. 산이 높으면 달이 작게 보이듯, 워낙 거친 세상에 섞여 있기로 더러는 잊으며 살긴 했지마는.

– 空山吐月, p. 158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촌부락을 방문할 때마다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 關山芻丁, pp. 237~238

“돈 벌기 쉽걸랑 자네두 마셔 조지구 태워 조지구 자서 조지지 말구 고향에다 땅두 좀 사놓구 허지? 살 땅은 웂어도 죽을 땅은 마련해야 허잖여.”
“임시 살 땅두 웂는데 아주 누을 땅을 장만해라? 도처청산골가매(到處靑山骨可埋)라니 죽은 뒤에야 고향이 따루 있나.”

– 關山芻丁, p.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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