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04

거북이도 난다 (Turtles Can Fly, Lakposhtha Ham Parvaz Mikonand, 2004)

이란, 이라크 | 드라마 | 97 분

감독 : 바흐만 고바디

공식 홈페이지 : www.turtlecanfly.co.kr

이라크 국경지역의 쿠르디스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에 사담 후세인의 핍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들 중에는 어린이답지 않은 리더십과 조숙함으로 또래 아이들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위성”이라는 소년과 전쟁 속에서 팔을 잃은 소년 “헹고”가 있다. “위성”은 “헹고”의 여동생인 “아그린”을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나, 그녀는 전쟁 중 받은 상처로 늘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위성”은 지뢰를 내다팔고 무기를 사두는 등,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면서 “아그린”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아그린은 그런 “위성”과 자기를 아껴주는 오빠 “헹고”, 그리고 불쌍한 아들인 “리가”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군인들에게 겁탈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악몽 때문에 늘 자살을 생각하는데……

 

수십마디의 말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함의하는 경우가 있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보다 단 한 장면의 영상이 더 큰 감동을 전하는 경우가 있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서구 세계에 깊이 각인시켰던 어느 소녀의 사진처럼,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게 관객에게 다가선다.

자신이 쿠르드족 출신이기도 한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전작 <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쿠르드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이라크 국경 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묵묵히 화면에 담고 있다.

 

나는 이란 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헐리웃 영화의 화려한 영상, 치밀한 시나리오, 유명한 배우와 감독, 튼튼한 자본력은 없지만

관객에게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힘은 어느 나라 영화보다도 뛰어나다.

게다가 상업주의에 물든 영화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가공되지 않은 영상과 조작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

가난하지만 현실을 낙관할 줄 아는 “천국의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헐리웃의 카메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란 영화는 상상의 세계를 담지 않는다.

마법 학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반지 하나에 목숨거는 사람들도 없다.

그저 현실을, 어떤 판타지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낼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보다 고통받는 사람들, 힘이 없기에 더욱 처절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두번째지만 확실히 이란 영화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는 색깔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그의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 관객에게 “지켜보는 것”만을 강요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핸드헬드 촬영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은 힘들지만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은 결코 제시하지도 않을 뿐더러 관객들 역시 그것을 기대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더 아련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관객을 방관의 공범으로 몰아세운다.

 

예전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무렵 진중권 교수의 책 “레퀴엠”을 읽었다.

군에 적을 두고 있을 무렵의 일이라 이성에 호소하는 그의 반전론이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졌었다.
(물론 이는 나의 좌파적 성향으로 그의 글을 좋아하는 개인적 선호 탓도 있긴 하다.)

이 영화에는 그런 논리적인 설득이 담긴 설명은 없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직접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을 뿐이다.

‘전쟁이 왜 나쁜 것인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라.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반전론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이 죄스럽게 여겨지는 부끄러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 <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 더 좋았던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강추를 때리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ㅡ.-)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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