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전상국 | 민음사 | ISBN : 8937404087 | 페이지 : 385
- 차례 -
우상의 눈물
돼지 새끼들의 울음
침묵의 눈
우리들의 날개
전야
달평 씨의 두번째 죽음
밀정
맥(脈)
수렁 속의 꽃불
고려장
겨울의 출구
잃어버린 잠
작가 연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을 읽은지 2년여 만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작가 전상국을 알게 되고, “우상의 눈물”을 읽게 되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이문열의 “우리들의…”과 많이 비교되는 작품이다.
그냥 비슷한 소재와 배경을 가진 두 작품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80년에 발표된 “우상의 눈물”과 87년에 발표된 “우리들의…”의 유사점을 들어 후자가 전자의 표절이고 아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한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우리들의…”를 이 작품의 아류라고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인 것 같다.
둘은 서로 많이 닮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이 다르다.
한 배에서 동시에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생김과 성격을 가진 이란성 쌍둥이 같다고나 할까.
학교라는 공간, 그곳에 절대 권력을 가지고 다른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의 존재(최기표-엄석대),
새로운 담임의 등장으로 달라지는 교실의 분위기, 영원한 것만 같던 왕국의 몰락과 왜소해진 독재자의 초라한 뒷모습..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상당히 엇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같은 학교라고 해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한 “우리들의…”과 고등학교를 배경으로한 “우상의 눈물”은 많이 다르다.
고등학생인 그들은 독재자의 힘, 그 자체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짐짓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며 그들의 순수성을 훼손시킨다.
게다가 “우리들의…”의 화자인 나, 한병태가 처음에는 독재자의 권력에 도전하다가 권력앞에 무릎꿇고 그것에 굴종하며 독재자인 엄석대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달리
“우상의 눈물”의 화자인 나, 유대는 독재자에게 처음부터 무릎꿇고 방관자로 일관하며 최기표와 형우, 그리고 담임을 멀리서 관찰할 뿐이다.
또한 담임 선생의 모습도 사뭇 다른데, “우리들의…”과는 달리 “우상의 눈물” 속 담임 선생은 굉장히 속물적이고, 어찌보면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우상의 눈물”을 이끄는 중요 인물 중 하나인 “형표”의 존재도 “우리들의…”에서는 대응되는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
학교라는 곳, 우리의 일생에 있어 유소년기와 청년기의 대부분을 바쳐야 하는 그 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으레 그렇듯이 시기와 질투, 음모와 암투가 사라지지 않는 곳이다.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은 일과 좋은 감정만으로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건 이상일 뿐이다.
아무리 학교 환경이 개선되고 교육의 질이 개선되어도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교실에는 또다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우상이 그들의 왕국을 철저히 수성하며 다른 아이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을 테지..
아이나 어른이나 인간의 속성은 어딜가든 똑같은 것 같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소설도 81년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들의…”(92)과는 달리 영화를 구해 볼 수가 없다. (“우리들의…”는 한 다섯번 쯤 본 것 같다;;)
…
“우상의 눈물” 외에도 11편, 약 40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이 이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재미있고, “우상의 눈물”처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전상국, 처음 접한 작가지만 상당히 깊은 인상을 안겨 주었다. ★★★★★ ★★★★☆

ex libris;
그 소문이 학교 선생들에게 알려져 문제가 생길 경우 십중팔구 나는 결딴이 나고 말 것이다. 기표는 그런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였다.
“그 새낀 악마다.”
형우가 동정 어린 눈으로 나를 충동질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없이 빙그레 웃어 보였을 뿐이다.
…
“어떤가, 우리 반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애는 없겠지?”
첫 만남에서 담임이 말한 우리들의 항해에 방해가 될 만한 그런 역행 가지를 귀띔해 달라는 것일 게다. 나는 불현듯 담뱃불에 지짐질당해 아직도 진물이 줄줄 흐르는 내 허벅지를 내 보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
“최기표, 그놈 괜찮을까?”
담임 선생이 조심스럽게 내 반응을 살폈다. 나는 내 허벅지의 상처를 내 보인 것처럼 불유쾌한 기분이 되어 얼굴을 돌렸다.
…
나는 문득 이제부터 일 년간 담임 선생과 최기표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질 싸움을 상상해 보았다.
…
아무튼 이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그네들 싸움을 구경한다는 것은 진정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
“선생님, 그런 일이라면 임형우가 잘 해줄 겁니다. 선생님이 염려하는 최기표도 형우가 잘 다스려 나갈 겁니다. 내일 당장 형우를 반장에 임명하세요.”
“그럴까? 네 말대로 임형우가 최기표를 잘 다스려준다면 고맙겠지만…… 내 생각엔 최기표를 부반장에 임명하면……”
“선생님, 기표 한 개인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기표의 힘을 빼어 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까?”
…
오월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오후 반장인 임형우가 드디어 재수파에게 당했다.
…
“임마, 나는 다 알고 있어. 기표가 저질러온 짓 말이다. 유대, 너도 기표한테 당했잖아! 그리고 너희들이 그놈들 부정 행위를 거들어준 것도 알고 있다.”
그랬겠지. 나는 속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무서웠다. 어른들의 저 음흉스러움, 알면서도 모른 체 시치미를 뗀 그 저의는 무엇인가.
…
형우는 우리들 사이에서 일약 영웅이 돼버렸다.
…
“최기표 군은 그 동안 피치 못할 가정 사정으로 결석했다. 앞으로 다시는 결석이 없을 것으로 안다.”
항상 뻣뻣하게 쳐들고 앉았던 기표의 고개가 잠깐 숙여지는가 싶게 느껴졌다. 그것은 이상한 조짐이었다.
…
“필요 없어.”
기표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퉁명스럽게 뱉었다. 그는 국어책을 읽고 있었다.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음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혈색이 더 좋아진 형우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아무도 기표를 무서워하지 않게 될 거다.”
형우가 손을 흔들고 자기 집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유능한 반장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씁쓸한 느낌이 가슴을 스쳤다.
…
“담임 선생님의 말씀처럼 지금 우리 친구 하나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힘을 합쳐 그 친구를 구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두를 잡은 형우는 언젠가 하교길에서 내게 들려준 기표네 가정 형편을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형우의 혀였다. 나한테 얘기를 들려줄 때의 그런 적대감을ㄴ 씻은 듯 감추고 오직 우의와 신뢰 가득한 말로써 우리의 친구 기표를 미화하는 일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
형우는 기표네 가정 사정을 낱낱이 얘기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온 기표의 허상을 빈곤이라는 그 역겨운 것의 한 자락에 붙들어 맨 다음 벌거벗기려 하는 것 같았다. 기표는 판잣집 그 냄새 나는 어둑한 방에서 라면 가락을 허겁지겁 건져 먹는 한 마리 동정받아 마땅한 벌레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
이제 아이들은 아무도 기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형이라고 호칭하는 아이도 드물었다. 아무나 곁에 가서 말을 걸 수가 있었고 때로는 어깨도 쳤다.
그것은 기표가 아주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도 수줍어하는 그 아이는 그렇게 당당하던 체구마저도 왜소하게 짜부러진 채 우리가 보통 사진을 찍을 적에 < 치이즈>하고 웃듯 그런 미소를 얼굴에 담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기표의 자리가 빈 것을 알았다. 다음날도 그는 결석했다. 무단 결석이었다. 담임 선생이 한 아이를 기표네 집에 보냈다.
“집에도 없어. 이틀 전에 집을 나갔대.”
…
그는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우리들 앞에 내던졌다. 기표가 바로 밑의 여동생한테 보낸 편지였다. 편지 맨 앞 줄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우상의 눈물 中
가난만큼 절실한 현실은 없었던 것이다.
– 고려장 中
“난 오빠가 말한 그 두 가지 방법이 다 좋지 않다고 봐.”
“그럼 넌 어떻게 할 거냐?”
“난 말이야, 오빠, 새 시장 사람들하고 도깨비시장 사람들하고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만나가지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거야.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듣고……”
“야, 웃기지 마. 그건 이상론이야. 현실은 달라.”
“오빠, 이 세상이 발전해 가는 것은 그러한 이상의 힘이야.”
“그러나 이번 도깨비시장의 경운 달라. 기름과 물이야.”
“오빠, 기름과 물은 다 액체야. 오래 있으면 다 녹아서 섞이게 돼. 그처럼 대화를 오래 나누다 보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져.”
“한쪽은 어떻게든지 더 많이 뺐으려고 머릴 짜내고 다른 한쪽은 되도록 안 뺏기려고 버둥거리고. 그건 결국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야. 싸움에선 결국 정복과 굴복이 있을 뿐이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오빠.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뺏는 쪽은 조금 양보해서 덜 뺏게 될 것이고 또 뺏기는 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뺏기는 게 아니라 줄것을 주는 것이라고 양보해서 생각하게 된단 말예요. 결과는 양쪽에 다 유리한 거예요.”– 겨울의 출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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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3th, 2005 at 12:52 am
재밌겠다. “우리들의….”도 안 읽어 봤는데 함 읽어봐야겠다. 아, 중학교때는 음모와 암투, 학교폭력이 좀 있었는데 고등학교때는 거의 없었지… 흠, 확실히 남녀공학이 좋아.;;
August 14th, 2005 at 4:35 pm
네가 모르는 곳에서 음모가 진했됐을거야..
너한테 충격을 안겨줬던 그 여자애의 한마디도 그 음모의 한부분 아니었을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