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8

2011년 12월 27일, 해바뀜을 코앞에 둔 날 인사발령이 났다.

연말이라 괜히 마음도 바쁘고 이런저런 정리안된 일들 때문에 신경 쓸 일도 많았는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들 배치하면서 나만 따로 발령을 냈다.

정기인사가 1월에 예정되어 있었고 그때 내가 부서를 옮기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생각치도 않던 지방으로의 근무지 이전.

인천, 지방이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수도권이지만 인천공항을 밟은 것 말고는 한 번도 간 적 없는 곳.

그리고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자취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군대에서 보낸 2년을 제외하고 여지껏 집에서 학교 다니고 직장 다녔던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사실 그 새로운 도전이 걱정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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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9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집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많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내게는 그의 글이 그렇게 위트넘치는 재미있는 글이 아니었나보다.

연말에 다가와 연차를 쓰며 책읽기를 마무리 할 수는 있었지만, 그간 이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기가 아주 어려웠던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글 자체가 어려운 글은 아니다.

그런데 작가가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나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맘껏 은유를 펼치다 보면 어느 새 주제에서는 살짝 핀트가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곤 했고, 나로서는 그런 글이 적잖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작부터 혹평을 하게 되었으나 그의 직설적인 화법들은 반가운 부분도 있다.

괜히 감상에 빠져 현상의 밝은 면만을 칭송한다거나 짐짓 고상한 척 있는 척 하면서 잘난 체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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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9

2011년 12월 7일

내일로 예정되어 있던 대학원 합격자 발표 문자가 왔다.

면접 볼 때, 너무 삽질을 한 탓에 당연히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아무 기대 안하고 합격자 조회를 했다.

결과는 역시나 불합격.

전공 관련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 대던 나였으니 합격하면 오히려 그 학교를 불신하게 되었으리라.

무슨 일이든 간절함과 노력 없이는 아무 결실도 맺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일단은 그냥 회사를 더 다닐 생각이다.

한 달 정도 뒤에는 진급도 예정되어 있고, 그 이후에 이직을 생각해보는게 나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원 진학에 대해 정보를 구하다가 듣게 된, “지금 대학원 들어가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말을 면접에 들어가자마자 교수가 내게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기에 더욱 결심을 굳혀본다.

결국 대학원 진학도 내게는 그저 도피처일 뿐이었나 보다.

 

2011년 12월 8일

나이를 먹으니 점점 흐리멍텅, 점점 “중간”이 넓어진다.

젊었을때는 뭔가 극명하게 “예”와 “아니오”를 구분할 수 있었는데 (물론 그것이 옳고 그름과 통하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점점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다고 타협하며 그레이존을 넓히게 된다.

극단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여유로워졌구나.

세상을 보는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아량이 커졌구나.

마치 내 자신이 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마도 실패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재일 것이다.

지금은 성공과 실패를 알 수 없지만, 만약 지금의 선택으로 내가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 겁난다.

아마 이것이 관용과 여유로워짐의 실체일 것이다.

나이먹는다는 것은 어른스러워지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어른이 되기 전에 나이를 먼저 먹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 나잇값 하면서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결혼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회사 여직원이 내게 조언을 구해와서 내가 해준 얘기가 바로 어른 되기 전에 나이부터 먹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런 조언 해 줄 자격이 나부터도 없다는 게 우습다..

 

2011년 12월 9일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다.

지금 이 블로그도 거의 업데이트 없이 가끔 소소한 글이나 올리고 있는 정도이지만,

다음에서 운영하는 티스토리 블로그 계정은 거의 이벤트용으로나 써먹는 곳이다.

티스토리에서 1년에 한번씩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탁상달력 사진 공모전을 하는데 당선된 사진들로 달력을 제작해서 블로그들에게 배포하는 행사다.

아마 올해가 세네번째 쯤 되었을 것이다.

나도 작년부터 참여했는데, 원래 사진 찍는 일 자체도 별로 없고 사진 찍는 재주도 없는 터라 참여만 하는 수준으로 응모를 했다.

그런데.. 덜컥 당선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참가상(탁상달력 1개) 기대하고 응모한 것인데, 정말 일말의 기대없이 응모했던 것인데 이렇게 당선이 되다니

한 편으로는 얼떨떨하면서도 인생은 뜻하지 않은 곳으로는 잘도 흘러 가는구나 싶은 무상함이 느껴진다.

엊그제 대학원 불합격 소식을 듣고 난 뒤라 그 결과와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간절이 바라지 않아도 될 일은 되는구나.. 하핫…

그나저나 당선작들을 보고 있노라니.. 왜 내 사진만 이리 허접해 보이고 끼지 말아야 할 자리에 끼어있는 듯한 기분인걸까.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괜히 부끄러워진다.

Nov 13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