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19

재일조선인들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재일조선인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GO”를 봤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일본 내에 우리나라가 아니라 북한과 교류하는 동포들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GO”를 보고 나서 그들 또한 우리의 동포들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일본 우익들의 협박과 사회적 차별에 고통받으면서도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 훗카이도의 유일한 조선인 학교인, “훅가이도조선초중고등학교”에서 1년간 학생들, 교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낸 다큐 영화다.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 정부는 그들에게 아무런 재정적인 지원도 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그들은 민족이라는 지우개로 정치와 이념이라는 구분선을 깨끗이 지우고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 “각종학교”로 분류되는 비정규 교과 과정이기에 그들은 대입을 위해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하고,

거리 문제로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은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해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남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내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부분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것”을 지켜낼 수 없다며,

추위를 감내하면서까지, 우리가 보기에는 고루하다 싶을 정도로, 치마 저고리를 고집하는 사람들.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집단화를 통해 강화되는 그들의 “민족주의”라는 낡은 이념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이념적인 접근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을 그리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감상한다면 상당히 감동적인 영화다.

아니,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겠지.

지구 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 그 갈라짐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비극과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Jun 14

방송된지 수년도 더 지난 드라마를 굳이 지금 보게 된 이유는.. 특별히 없다.

국내에도 워낙 익히 알려진 일본 드라마 중 하나이고,

마침 내가 무료하던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어쨌든 그래서 보게 되었는데, 1화에서부터 주인공 나츠미(타케우치 유코)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레스토랑 “키친 마카로니”에 우연찮은 계기로 가게 된 나츠미가 주문한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오이시이(おいしい, 맛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을 보며 왠지 군침을 흘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 드라마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대개 12~13화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 일본 드라마는 내용이 짧아서 보는데 부담이 없다.

시즌1 흥행하면 시즌2, 시즌3, 시즌4,… 지치지도 않고 찍어대는 미드는 나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담백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서 재벌과 엮이고 의사, 변호사가 나오지 않으면 전개가 안되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잔잔한 재미가 있다.

물론 일본 드라마의 오버하는 연기와 연출, 뻔한 전개는 마이너스..

런치의 여왕을 보면서는,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떠올리게 하는 가난한 부녀 손님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제일 어색했던 것 같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런치”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 알겠지만, 이건 좀..

어쨌든 아버지 뜻을 이어 30년이 넘도록 같은 맛을 지켜내며 “키친 마카로니”만의 “런치”를 지켜나가는 네 형제의 모습을 보니

점점 전통의 것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과 대비되어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종로 피맛골이 사라지고 한옥 가옥들이 철거되는 21세기 대한민국,

장인정신과 전통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Jun 12

일찍이 싯다르타는 인간이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했다 한다.

죽음.

태어남이 있기에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어떤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해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생과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

굿’ 바이 : おくりびと : Good &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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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04

시칠리아의 암소.

고대 시칠리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사형 도구.

이 사형 도구를 만든 사람이 첫 희생자가 되었다고 하니 왠지 프랑스의 ‘기요틴(단두대)’을 떠올리게 한다.

악동 진중권이 쓴 글을 묶어낸 ‘시칠리아의 암소’는 그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도덕 군자들의 비도덕을 비웃으며 한줌의 부도덕으로 새로운 에토스를 창조하는 글쓰기. 문체의 무거움 속에 은폐된 존재의 경박함을 드러내며, 새털처럼 가벼운 문체 속에 정신의 무거움을 은폐하는 글쓰기. 인정이라는 가면 뒤로 숨은 잔인성을 드러내고 공공연한 공격 속에 인간의 조건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감추는 글쓰기. -p.270)에 의해 쓰여진 그의 초기 작품이다.

그가 “불편한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그 글쓰기 목적에 대해 설명하는 글도 있고,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며 고백(?)하는 글도 있다.

출간된 지 10년 가까이 된 책을 굳이 지금 꺼내 읽는 내 취향도 고약하지만,

그 글들이 지금도 그대로 현실을 가감없이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고약하게 느껴진다.

강산도 변하게 한다던 10년이라는 세월은 이 땅을 조금이나마 “진보”하게 만들기에는 너무 짧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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